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택배, 그 한계산업의 현주소

"택배 물건이 왔습니다. 000동000호 맞죠?" "그 옆 단지로 이사를 했거든요. 새 주소로 부탁 드릴게요." "그곳은 제 담당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내일 다른 기사가 배송해 드릴 겁니다." 6개월 전 기자가 겪은 일이다. 옛 집과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불과 500m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차로 5분도 안되는 거리라 택배기사에게 배송을 부탁했지만 워낙 단호하게 거절하는 통에 다시 부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기자는 융통성 없는 이 회사의 서비스에 혀를 찼었다. 하지만 택배업계를 출입하게 되면서 이 같은 생각은 이내 바뀌고 말았다. 택배기사 한 명이 하루에 처리하는 물량은 약 150상자. 한 상자를 배송하는 데 약 4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치면 하루 10시간을 꼬박 일하는 셈이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일해서 버는 돈이 한 달에 150만원 남짓이다. 기자가 서비스 정도로 취급한 5분이 택배기사에게는 '생존'이 걸린 시간이었던 것이다. 국내 택배산업은 해마다 물동량이 늘어 지난해 약 10억6,000만 상자(업계추정)의 물량이 배달됐다. 시장 규모도 3조원으로 커졌다. 시장이 제대로 섰으니 돈을 버는 이들이 나올 법도 한데 택배로 사업해서 '재미'좀 봤다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진입장벽이 낮아 업체들이 난립하다 보니 점유율 확보를 위해 밑지면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처럼 생활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와중에도 택배 요금은 오히려 2007년 2,516원(상자당)에서 올해에는 2,187원으로 떨어졌다. 이렇다 보니 택배기사의 근무 여건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업무 과다로 일을 그만두는 택배기사의 수도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물가안정도 좋지만 택배업이 선순환하고 종사자들이 기본적인 삶이라도 영위하려면 당국의 관심과 요금의 현실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세상 모든 물건 값이 다 오르고 있는데 택배요금만 떨어진다고 물가가 안정될 리는 없다. 경쟁 없는 담합도 문제지만 과당경쟁이 빚어낸 덤핑은 언젠가 부실 서비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