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무장단체가 배형규 목사를 살해한 것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나머지 한국인 피랍자의 소재와 신변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날 밤 석방돼 미군기지로 이동 중인 것으로 전해졌던 인질 8명이 다시 끌려간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행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피랍자들의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고 확인했다.
◇이동 중이던 피랍자 8명 행방은?=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아프간 피랍 한국인 중 8명이 석방됐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우리 측이 관할하는 지역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체적 정황을 확인 중”이라며 “탈레반 측으로부터 풀려났는지 안됐는지 확인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가즈니주(州) 경찰책임자인 알리 샤 아마드자이는 이날 “어제 밤에 잠을 자지 않았다”며 “만약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 가운데 누구라도 해쳤다면 내가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탈레반 무장세력은 이날 아프간 이슬라믹프레스(AIP)를 통해 “협상 시한인 26일 오후1시(한국시각 오후5시30분)까지 탈레반 수감자들이 풀려나지 않을 경우 인질을 추가로 살해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현재 한국인 인질 22명은 아직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인 인질 22명은 6~8명씩 3곳에 분산돼 억류된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는 특히 이들 중 전날 석방되던 중 다시 무장단체 본거지로 끌려간 인질 8명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력을 총동원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확인한 결과 석방이 임박했던 인질 8명은 당초 수용돼 있던 곳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아프간 현지 관리의 말을 인용, “탈레반이 자신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인질 8명을 인도 장소로 옮기던 중 갑작스럽게 본거지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도 26일 오전 “인질들을 한명도 석방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이 안 되면 인질들을 모두 살해하겠다”고 재차 위협했다.
◇엇갈린 피랍자 22명의 운명=탈레반이 최종으로 내놓은 협상 시한인 26일 오후1시(한국시간 오후5시30분)가 지났지만 아직 인질들을 추가로 살해했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디 대변인은 이날 AFP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마지막 협상시한 이후 한국인 인질이 더 이상 살해되지 않았다”며 “(인질들이) 지금까지 모두 살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질들의 신변상 안전은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실제 아마디 대변인은 AFP통신과의 전화통화에 앞서 CNN과 인터뷰에서 “우리들이 요구한 내용이 수용되지 않으면 아직도 억류돼 있는 인질 14명을 목요일(26일) 새벽까지 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 시한”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25일 오후 국회 질의답변 과정 중 메모지에 작성한 ‘8+6+9’라는 숫자가 언론 카메라에 잡혀 관심이 쏠렸다. 이들 숫자를 모두 더하면 납치된 인질의 수(23명)와 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숫자 중 ‘8+6’에는 ‘돈’, ‘9’의 밑에는 ‘강경’이란 단어가 적혀 있어 향후 협상 진행과정을 엿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전날 석방이 임박했던 8명의 인질은 거액의 몸값을 주고 석방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메모에 적힌 대로 이번 사태가 해결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송 장관의 메모에 적혀 있는 대로 9명의 인질을 억류하고 있는 탈레반 조직원들은 단순히 금전적 보상이 아닌 인질ㆍ포로 맞교환을 요구하는 ‘강경파’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향후 협상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8+6’에 해당하는 14명의 인질들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과의 협상이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될 경우 전격적으로 풀려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