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금융규제 방식 혁신해야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추진된 많은 규제 완화나 개혁은 대부분 그 내용에 집중되고 선진 자본시장에 걸맞은 규제 방식이나 절차가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듯하다. 감독 현장에 있으면서 느끼는 현행 금융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법규에 획일적인 처방전식 규제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시장이 작고 단순하던 때와는 달리 시장이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 다양한 목표달성 경로가 있어서 어느 한 경로가 막히더라도 우회하는 방법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금융회사가 서로 규모나 내용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게 되면서 획일적 규제는 어떤 회사에는 불필요한 것이 되고 어떤 회사에는 너무 적은 것이 되기도 한다. 병의 치료라는 하나의 목적이 있으면서도 체질에 따라 약의 처방이 달라지듯이 금융규제도 이제는 금융회사의 규모나 사업내용에 따라 유연하면서도 보편성을 갖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규제가 처방전식 룰 규제에서 벗어나 과감히 원칙 중심 규제로 바뀌어야 한다. 영국의 금융감독당국인 FSA는 “금융회사에 대해 자신의 사업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등의 11개 원칙을 제시하고 이 원칙을 위반한 금융회사는 일정한 행정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의 금융시장은 금융회사에 많은 자유를 주지만 금융감독당국에도 원칙 중심 규제에 필요한 포괄적 규제권을 주어 절묘한 견제와 균형 원리를 작동시키고 있다. 일각에서 원칙 중심 규제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고 감독당국에 권한남용 문제를 일으킨다고 반대하지만 우리나라 형법이 사기금지조문 하나로 수많은 형태의 경제범죄에 대처하는 데에서 보듯이 이는 법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금융감독당국에 대한 불신에 연유한 주장이다. 마치 금융산업의 혁신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을 떨쳐내고 과감한 네거티브제를 도입한 것처럼 금융규제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감독기관에 대한 불신에 얽매이기보다 새로운 금융환경에 맞는 금융규제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금융감독당국에 적절한 권한 부여가 요구된다. 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이에 합당한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권리남용 문제는 감독권 자체의 제한보다는 감독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통제하는 엄격한 감독절차 규제를 통해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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