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께 떼쓰는 심정으로 왔습니다.” 박 대통령의 바로 오른쪽에 앉은 안수원 레드로버 이사가 운을 뗐다. 순간 참석자 180여명의 시선이 집중된다.
안 이사는 “선례가 없다 보니 저작권ㆍ법률문제ㆍ정보부족 등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의견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그거야 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지원이 부족해서 발전을 못한다면 그건 정부의 책임입니다”라고 즉답했다.
청와대를 처음 방문했던 중소기업인들의 굳은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는 순간이었다.
최종석 화인특장 대표는 시간관계상 원래 발언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현장의 목소리는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며 발언 기회를 제공했다. 최 대표는 “특장 차량을 해외에 가지고 가서 전시하는 것이 힘듭니다. 해외수출 전시비용 지원을 확대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대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지원을 다하면 좋은데 갑자기 지원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면 3차원으로 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박 대통령의 경제화두인 ‘창조경제’의 단면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회의는 추상적인 경제정책을 선전하고 알리는 자리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핀 포인트(Pin Point) ’형태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조원동 경제수석은 “장관들의 발언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가능하면 중소기업과 경제단체 관계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서 “규제완화의 경우 해당지역 국회의원들도 참석해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회의에서는 250건의 투자촉진 건의 중 50건이 해결됐고 117건은 제도개선을 통해 처리하기로 했다. 자리배치도 파격이었다. 통상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앉았던 대통령의 옆에는 안수원 레드로버 이사, 장준근 나노엔텍 대표가 자리했고 박 대통령의 정면에는 이재진 심팩 대리가 앉았다. 중소기업 참석자들은 처음에는 자리에 앉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쭈뼛쭈뼛했지만 청와대 비서진으로부터 박 대통령의 회의 스타일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회의는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 중 최대 규모였다”면서 “앞으로 매 분기 정기적으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기업인들의 애로사항과 건의내용을 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는 현오석 부총리 등 11명의 장관이 총출동했고 신제윤 금융위원장,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참석했다. 부처 회의를 주재하며 직원들에게 정책을 지시했던 장ㆍ차관들은 이날만큼은 초등학생처럼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메모지에 적느라 식은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