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특유의 돌파력으로 대통령 후보 단일화, 열린우리당 창당, 탄핵정국을 정면 돌파해왔지만 이번 위헌 결정은 어느 정도 국민여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노 대통령으로서도 특별한 묘책을 발견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여기에서 주저앉을 것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을 찾기는 힘들다.
물론 여권이 이를 계기로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한나라당의 공세 역시 드셀 것은 분명하지만 ‘개헌’이나 변형된 국민투표를 시도하는 등 `특단의 카드'를 내놓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없지 않다.
특히 노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발언기회에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정당성과 의지를 분명하게 밝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 계획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로 정부의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면서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도 감춰져 있다”,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 등 강력한 톤으로 행정수도 이전 반대운동을 비판해왔다.
또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부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합의하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헌재 판단이 법에 걸린다고 해서 탄핵될까봐 못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도 헌법재판소가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헌법상 명문의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왕조 이래 600여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된다”며 위헌판결을 한 것과 관련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향후 대책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일단 여론의 추이를 주시한 뒤 대응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김종민 대변인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느냐”는 질문에는 “현재 뭐라고 답변하기 어렵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헌재의 결정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 외에 다른 평가나 의견은 없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의 입장발표로 미뤄 노 대통령은 헌재 위헌판결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기존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도 있다. 김 대변인은 행정수도 이전의 계속 추진여부와 관련, “그 문제를 포함해 전체적으로 시간을 갖고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뒤 향후 국민여론 수렴방식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여러 방법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현재로선 노 대통령이 선택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결국 위기 때마다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온 노 대통령이 정면돌파 카드를 내놓을 수도 있다. 행정수도 이전을 백지화하거나 헌법개정을 거쳐 국민들에게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직접 묻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20일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21일 헌재의 판결이 나오기 불과 하루 전인 20일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의 지역이기주와 수도권의 지역이기주의는 다르게 봐야 한다”면서 “수도권은 각별히 국가 전체를 이끌어가는 지역으로서 ‘국가적 안목’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해 주목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충북 제천시청에서 열린 ‘충북지역 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에서 “때로는 지역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를 인정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수도권이 자기이익만을 앞세우는 목소리가 관철되는 시대가 온다면 대한민국에 힘없는 지역은 대립과 갈등으로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