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는 용감했다.
벨기에의 쌍둥이 스프린터 조너선ㆍ케빈 보를레(23)는 30일 대구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00m 결선 무대에 함께 섰다. 동생인 케빈이 6레인에 섰고 5분 먼저 태어난 형 조너선은 8레인을 배정받았다. 7레인의 타바리 헨리(버진아일랜드)를 사이에 두고 똑같은 생김새의 두 명이 출발선에 선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둘은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직후 조너선이 발 부상을 입자 6주 뒤 동생 케빈도 같은 부상을 당하는 등 천생 쌍둥이다.
조너선과 케빈이 메이저 대회 결선에 나란히 오른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둘은 지난해 유럽선수권 결선에 진출해 동생 케빈이 금메달을 땄고 형인 조너선은 7위에 머물러 동생을 축하했다. 그러나 개인 최고기록은 형이 더 좋았다. 44초71로 동생에 0.03초 앞섰다. 지난해 동생이 금맥을 캤으니 이번에는 형 차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메달권에 진입한 것은 동생 혼자였다. 케빈은 막판 직선 주로에 접어들 때만 해도 5위였으나 무서운 스퍼트로 2명을 제친 뒤 3위로 골인했다. 기록은 44초90. 이어 조너선도 마지막에 한 명을 제쳐내 45초07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함께 출전했지만 나란히 준결선 진출에 만족해야 했던 쌍둥이는 벨기에 국기를 함께 두르고 트랙을 돌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다.
한편 금메달은 44초60의 개인 최고기록을 낸 그레나다의 ‘복병’ 키라니 제임스의 차지였다. 19세에 불과한 제임스는 세계선수권 첫 출전 만에 디펜딩 챔피언이자 우승후보 1순위였던 라션 메리트(미국)를 꺾는 반란을 일으켰다. 메리트는 제임스에게 0.03초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미국 대표팀 내 맞수인 제러미 워리너가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면서 메리트의 우승은 당연한 듯했다. 그러나 그레나다의 ‘육상 신동’은 메리트의 2연패를 허락하지 않았다. 2009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사상 처음으로 200ㆍ400m를 석권하는 기록을 세운 제임스는 무서운 패기를 앞세워 미국의 자존심을 꺾어버렸다.
남자 800m에서는 세계기록(1분41초01) 보유자인 다비드 레쿠타 루디샤(23ㆍ케냐)가 1분43초91로 우승했고 독일의 로베르트 하르팅(27)은 남자 원반던지기에서 68m97로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여자 7종경기에서는 러시아의 타티아나 체르노바가 6,880점으로 우승, 2연패를 노렸던 제시카 에니스(영국)를 은메달로 밀어내고 ‘새 철녀’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