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성과주의 문화 잘 되려면

'강(江) 남쪽의 귤나무를 강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江南種橘 江北爲枳)'는 중국의 고사가 있다. 한대 초기의 회남자(淮南子)라는 문헌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환경요인이 그 근본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수입한 미국식 성과주의 문화가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 환경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장담하기 어렵다. 실적에 따라서 보상을 차별화하는 성과제도는 연공서열주의보다 동기부여나 성과향상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인식으로 국내기업들이 도입했지만 검증과정 없이 서둘러 적용하려 했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 체질과 잘 맞지 않아 적잖은 시행착오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도입했던 성과주의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다. 결과에만 연연해 일보다 자기포장에 더 신경을 쓰고 실적만회를 위한 과욕으로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예도 있어 도입을 철회하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성과주의 문화의 본산지인 미국에서조차 그 폐단이 불거져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엔론ㆍ월드컴 등이 저지른 회계부정이 바로 단기실적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다. 상당수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스톡옵션이나 보너스라는 결과에만 눈이 어두워 성과를 부풀리는 비리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성과주의 제도는 이와 같이 역성과(逆成果)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것은 미국식 모델이 안고 있는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숫자로 표시되는 단기 재무성과에 치중하기 때문에 장기 전략추진 등의 비재무 부문을 등한시한 채 자기과시적인 이기주의와 결과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내 몫 챙기기에만 급급하면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에 승부수를 던지는 무모함으로 비리와 부정에 이르는 모험까지 감행하게 되는 취약점이 있다. 이와 같은 결함을 극복하고 강점을 우리의 문화토양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환경여건이 정착돼야 할 것이다. 우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시스템의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시스템 설계는 불가능하지만 평가방법을 투명하게 공개해 공감대를 이끌어냄으로써 평가가 인간관계나 연줄이 아닌 공정성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무형자산에서 창출되는 질적인 부가가치가 평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비전과 경영전략, 장기투자, 구조조정, 프로세스의 혁신 등의 비재무성과가 경시돼서는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잃게 되고 지속적인 기업가치 창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몫 챙기기 경쟁도 팀플레이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기업문화의 정립이 중요하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라는 정글의 논리가 적용되는 환경에서는 경쟁격화가 불가피하지만 기업가치는 개인의 노력보다는 팀의 노력에 의해서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구성원은 팀워크를 우선하고 조직력이 발휘되도록 협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윤리경영의 기반이 구축돼야 한다는 점이다.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대를 충족하지 않고는 고객의 신뢰를 잃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회계부정 스캔들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윤리와 이익은 상호선택적(trade-off)인 관계가 아니며 상호공생(symbiotic)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의 기대와 가치에 합당한 윤리경영의 토대 위에서 성과를 산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여건의 개선작업 없이 미국식 성과주의를 문화와 의식구조가 다른 우리 토양에 무리하게 착근시키려고 서두르는 것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남쪽의 귤이 강북의 탱자가 되듯 본질과 전혀 다른 변종(變種)의 모습으로 나타나 실익을 거두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기업문화 환경을 정확하게 진단ㆍ분석하고 정비해 그 토양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기철<우리금융그룹 상무>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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