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 고등학교 친구 A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A가 안부를 묻자마자 어렵게 꺼낸 본론은 자기가 아끼는 직장 후배가 음주운전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처자식도 있고 성실한 후배라 안타깝다며 내가 전화 한 통 해주면 해결될 것 같은데 해주면 안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글쎄, 내가 전화를 했다 치자. 전화 받는 쪽에서 내가 판사인지 어찌 알 것이며, 안다고 해도 “그래서요?”라고 하면 내가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건에서 누군가 압력을 넣어 유리한 판결을 받는 일이 생긴다면, 어느 누가 법원의 판단에 대해 정당하다고 생각하겠는가. 더구나, 판결로써 법과 원칙이 무엇인지, 범죄에 따른 형벌은 어떤 것인지를 선언하며 매일같이 고민하는 게 판사의 일인데 양심상 그럴 수도 없다. 내가 이런 저런 설명을 붙여 안 된다고 말했더니, A는 의아해 하는 눈치다. 판사가 전화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안 된다니….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난 괜히 미안해졌다. 언젠가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과 비슷한 얘기를 나누는 중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슬쩍 “친한 사람은 해 주고 나만 안 해주는 거 아냐? 섭섭하게” 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래도 아까 A는 나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라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친구들이 내 말을 그리 생각한다면 나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A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올곧은 모범생이었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알아주는 공기업에 취직한 친구다. 내가 판사가 된 이후 시골에 사시는 친지들이 어려운 일 있을 때 잘 봐달라는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안 그럴 것 같은 친구가 판사 전화 한 통이면 사건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럼 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내가 재판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도 판사를 아는 쪽이 이긴다고 생각할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A는 본론만 얘기하고 끊기엔 미안해서인지 다른 얘기도 좀 더 하다가 마지막으로 “판사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재판한다면서 늦게까지 야근을 왜 하냐? 딱 들어보고 망치로 땅! 땅! 땅! 때리면 되는 거 아냐? 일찍 가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판사가 재판하는 날 빼고는 노는 줄 안다. 그래서 나는 재판이 없는 날에 무슨 일을 하는지 열심히 설명해준다. 당사자들의 억울한 사연이 담긴 서면과 증거들을 꼼꼼히 읽어보고, 받을 돈이 많으면 그 총액이 얼마인지 계산기를 두드려 더해보고, 이자가 얼마인지 기간별로 다 계산해보고, 중간에 채무자가 갚은 돈은 빼주고, 그러다가 10원이라도 계산이 안 맞으면 맞을 때까지 다시 계산기 열심히 두드리고. 모르는 분야라도 나오게 되면 이리 저리 묻고 책 찾아 공부하고, 법률적 쟁점을 판단함에 있어 법과 판례의 취지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고, 엉뚱한 사람한테 가서 강제집행하는 일이 없도록 당사자의 인적사항에 틀린 것은 없는지 살펴보고…. 판사들이 재판 없는 날에 바쁜 이유는 이렇듯 재판하는 날 쌓아 놓은 기록들을 검토하느라고 그런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랬더니, 또 어떤 친구가 그런 건 아랫사람들이 해주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판사의 일이란 혼자 하는 것이어서 그런 거 해줄 아랫사람이 없다는 것 역시 친구들은 잘 모른다. 어쨌거나, 그런 오해를 어떻게 불식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면서도 판사들은 오늘도 당사자들 얘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사연이 담긴 기록 한 장 한 장을 팡팡 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넘긴다. 이렇게 우리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더디지만 최소한이요, 기본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영 남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