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韓中日 바둑영웅전] 죽음 지향론

제5보(83~100)


조훈현의 난투 전술을 찬찬히 분석해 보면 그 근저에 죽음에 대한 입장 정리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극한적인 용맹을 마음껏 휘두르는 것이다. 바둑은 전쟁을 닮아 있다. 장병의 전사를 무조건 기피해서는 전쟁을 이길 수 없다. 더 큰 전과를 기약할 수만 있다면 전투의 사령관은 장병의 전사를 태연히 적극적으로 용인한다. 겁쟁이는 전쟁을 지휘할 수 없다. 조훈현의 난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사석작전이다. 그는 자기의 돌을 죽이고 싶어한다. 이러한 경향은 절정 고수들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지금은 권력의 단맛에 젖어 바둑이 무디어졌지만 중국의 풍운아 녜웨이핑9단은 그의 전성시대에 대국때마다 사석작전을 생각했다. 한 차례도 사석작전을 써보지 못하고 그냥 바둑이 끝나면 그는 몹시 슬퍼했다고 한다. 우상귀 방면에서 사석작전으로 성공한 조훈현이 우변에서 그 효험을 거둔 데 그치지 않고 상변에서도 그 여흥을 한껏 즐기고 있다. 왕레이는 애초에 잡아놓았던 포로들을 도로 살려보내지 않기 위해 너무도 비싼 댓가를 계속 치른 것이다. 흑93은 역끝내기를 하면서 백대마가 미생임을 은근히 추궁한 수. 조심성 많은 기사라면 가에 하나 몰아 안전을 기했겠지만 조훈현은 그쪽으로 외면하고 실리의 요충인 96으로 달려갔는데…. 검토진은 그 수를 조훈현 특유의 ‘심한 수’라고 지적했다. 나에 보강하는 것이 정수였다는 것. 흑97의 준동이 통렬해서 바둑이 몹시 어지럽게 되었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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