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Ceo&Story] 하단 박스

문주현 ㈜MDM 회장은 올해로 창립 10돌을 맞은 ‘문주장학재단’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문주장학재단은 그가 지난 1998년 회사를 창업한 뒤 3년 만인 2001년 5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재단이다. 기업가로서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젊은이들이 향학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거금을 내놓은 것이다. 문 회장은 재단의 출연금을 40억원까지 늘리며 장학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장학사업에 대한 애착은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전남 장흥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 일과 김 양식을 돕기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고향을 떠나 광주직업훈련원에 국비장학생으로 입학해 선반 밀링 작업을 배웠다. “고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나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을 보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공부를 더해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직업훈련원을 그만둔 문 회장은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쳤지만 나이 때문에 군에 입대해야 했다. 결국 그가 그토록 열망하던 대학 입학의 꿈이 이뤄진 것은 26세 되던 1983년. 하지만 이번에는 ‘폐결핵’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돈을 벌어서 대학을 다녀야 했던 그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을 때 길이 열렸죠. 한 지인이 ‘봉신장학재단’이라는 곳을 소개해줬어요. 면담을 통해 사정을 설명했더니 재단 이사장께서 ‘이런 학생은 도와줘야 한다’며 장학금 지급을 결정했죠.”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문 회장은 늦깎이로 들어간 나산실업에 공채 1기로 입사, 샐러리맨으로 성공신화를 써나갔다. 부동산개발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입사 7년 만에 7번의 특진을 거듭하며 이사로 승진한 것. 당시 그는 국내에서 업무용으로만 인식되던 오피스텔에 주거개념을 도입해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으며 수서 나산복합단지, 미시860, 목동스위트 등 브랜드 오피스텔ㆍ주상복합 상품들을 잇따라 히트시켰다. 하지만 한때 재계 순위 30위권까지 오르며 커가던 회사가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게 되면서 그는 사업가로 새출발을 하게 됐다. “대형 건설사에서 주택 제공 조건까지 내걸고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아닌 내 스스로의 능력으로 승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겁니다.” 그는 “만약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학업은 물론 사회적 성공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사회의 도움으로 꿈을 이뤘으니 그걸 되돌려주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의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어려운 성장배경 때문에 문 회장의 문주장학재단 운영방식도 남다르다. 장학생 선발과정에서 성적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 대신 장학금 지급 대상은 결손가정이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으로 국한된다. “도움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은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문 회장은 “앞으로도 문주장학재단 출연금은 계속 늘리겠다는 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라며 “환갑이 될 때까지 출연금을 1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정두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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