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6년 1월28일 11시38분(미국 동부시간). 챌린저호가 케이프 커내버럴의 발사대에서 이륙한 지 73초의 시간이 흘렀다. 우주를 향해 도약하던 우주왕복선에서 갑자기 화염이 치솟으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우주여행 사상 처음으로 평범한 서민이 탑승한다는 소식에 발사장면은 세계 전역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F 스코비 선장 등 7명의 승무원은 그렇게 전미국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83년 처녀 비행에 들어간 챌린저호는 ‘최초의 흑인 우주비행사 탑승’과 ‘최초의 야간 발사’ 등 각종 신기록을 잇따라 수립하며 기록제조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외부연료 탱크 이음매에 생긴 균열은 미국의 우주개발 시계를 2년9개월이나 멈춰 세웠다.
구 소련과 우주개발 경쟁을 벌이던 미국은 유인우주선으로 ‘달’을 정복함으로써 우주개발에 관한 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81년 우주를 왕복할 수 있는 신개념의 비행선(스페이스 셔틀) 1호인 ‘컬럼비아호’가 발사되면서 우주개발은 단순한 연구와 군사 목적을 넘어서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챌린저호는 캐나다 통신위성인 애닉 C와 인도네시아 통신위성 팔라파 B를 정지궤도에 투입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와 함께 W 손턴 박사가 당뇨병 치료를 위해 무중력 상태에서 인체의 신장세포와 개의 췌장세포, 쥐의 뇌하수체 등 생세포 분리 실험도 실시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2003년 2월 콜롬비아호가 폭발하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지만 미국은 내년 5월에 새로운 우주왕복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어떠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주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조영훈ㆍ금융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