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5월 22일] 6·25전쟁과 오페라 '카르마'

흔히들 "시대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이 역사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곡가인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대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가 음악을 낳으며 그 시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역사를 만든다"고. 6ㆍ25 한국전쟁은 역사의 흐름이 어긋나게 빚어놓아 수많은 희생과 상처를 남긴, 그리고 그 어긋난 운명의 덫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한 이 시대 한국인 모두의 이야기이다. 6ㆍ25라는 단어 하나만 들어도 한국인 모두는 그 속에 함축된 수많은 의미들을 공유한다. 애정산맥 각색·재구성해 작곡 이렇게 한국인 모두가 공유하는 아픔과 한, 생생한 삶의 흔적들은 슬픔의 노래, 사랑의 노래가 되고 문화가 되며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그 시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씨앗이 돼 역사로 꽃 피우고 그 이야기, 노래와 만난 이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씨앗으로 심겨져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나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 레온카발로의 오페라'팔리아찌' 등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많은 오페라가 실존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탄생됐듯이 오페라 ' 카르마' 또한 6ㆍ25 전쟁을 전후해 실존했던 한 인물에 의해 탄생됐다. 1950년 6ㆍ25 전쟁을 전후해 실존했던 전투경찰대장 차일혁(1920~1958)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토리화한 한국 최초의 경찰영화 '애정산맥'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아들 차길진이 소설 '애정산맥'을 썼으며 오페라'카르마'는 소설 ' 애정산맥'을 각색, 재구성해 작곡됐다. 6ㆍ25전쟁이 발발하기 전 지리산 쌍치골에서 함께 자란 오페라의 세 주인공 차한ㆍ신아ㆍ덕삼은 전쟁 발발 후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되고 비극적 운명으로 다시 만난다. 차한은 빨치산 공비를 토벌하는 토벌 대장으로, 차한의 친구 덕삼은 빨치산 공비 대장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공비가 된 여주인공 신아는 첫사랑이었던 차한을 암살하라는 현재 애인 덕삼의 지령에 갈등하게 되고 결국 진정한 사랑을 차한에게서 확신하게 된 신아는 차한 대신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덕삼 또한 현장에서 군인들에게 사살되고 만다. 이러한 비극적 운명에 책임감을 느낀 차한은 강물에 투신 자살함으로써 오페라는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단순한 스토리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지만 작곡가는 이 오페라의 마지막 결말을 통해 핵심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오페라의 마지막 장에서 이 모든 비극을 지켜본 주인공 차한은 이렇게 노래한다. "(전략) 책임지지 않는 역사는 아물지 않은 상처와 같다. 그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죽음은 삶의 연속이다. 죽음을 통해 새 삶이 탄생한다면, 새 역사가 시작된다면 내 기꺼이 내 삶을 조국 위해 바치리." 새 역사 여는 희망의 씨앗되길 이러한 절규를 통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 격랑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치열했던 삶의 흔적들은 그것이 씨앗이 돼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희망의 끈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결국 자신을 던진 사랑, 오직 그 사랑만이 전쟁과 폭력과 반목으로 얼룩진 우리 운명의 카르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나아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6ㆍ25전쟁 60년이 지난 이 시대가 만들어낸 이야기, 오페라 '카르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이 오페라 속에 아픔의 시대를 살아갔고 운명의 흐름에 맞섰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감으로 다가가 청중들의 마음속에 씨앗으로 심겨진다면 그 씨앗은 분명 또 다른 새로운 역사를 꽃 피우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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