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상장사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의 이중고 속에 외형 성장 없이 이익만 늘려가는 '불황형 흑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재 가격 하락과 환율 효과 등에 힘입어 영업이익은 증가했지만 수요 부진의 높은 벽은 넘지 못했다. 특히 매출이 뒷걸음치면서 기업의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연결재무제표를 제출한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579개사 중 506개사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상반기(1~6월) 매출액은 823조4,53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7% 감소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7.3% 증가한 52조3,703억원을 기록했으며 순이익은 1.4% 줄어든 37조9,130억원에 그쳤다.
상장사들이 장사를 얼마나 잘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출액 영업이익률과 매출액 순이익률은 지난해보다 소폭 개선됐다. 상반기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6.36%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1%포인트 높아졌으며 매출액 순이익률도 4.60%로 지난해보다 0.15%포인트 상승했다. 1만원짜리 상품을 팔아 636원의 영업이익을 남겼고 이 중 세금 등을 뺀 순이익이 460원이었던 셈이다.
상반기 실적이 부진했던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를 제외하면 수익성 개선 흐름은 두드러졌다. 매출액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를 제외할 경우 상장사들의 상반기 연결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9.2% 늘었고 연결 순이익도 11.8% 증가하는 등 수익성 개선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전체 상장사 매출액의 11.3%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상반기 연결매출액은 95조6,555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9.78% 감소했으며 연결영업이익은 12조8,773억원으로 17.85%나 줄었다.
업종별로는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업의 실적 개선세가 돋보였다.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금융업 48개사 중 합병이나 분할 등이 발생한 7개사를 제외한 41개사의 영업이익은 7조5,53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3% 증가했다. 순이익 역시 42.2% 늘어났다. 특히 거래대금 증가세에 힘입어 증권업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14.9% 늘었고 순이익은 무려 480.4%나 급증했다. 이에 비해 운수·창고와 건설업은 적자로 돌아섰고 종이·목재와 섬유·의복, 운수장비 등은 순이익이 감소했다.
상장사들의 수익성 개선에도 불구하고 매출 감소로 비용 절감 효과가 퇴색하는 '불황형 흑자'가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자체의 영업 개선 성과 없이 비용 절감 효과로만 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결국 질적 개선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낮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며 "경기 회복에 따른 매출 성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향후 주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 경기 둔화와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정보기술(IT) 수요 위축의 여파로 하반기 기업 실적 전망도 하향 조정될 것"이라며 "침체된 내수경기를 살려 기업의 실적 개선을 이끄는 정부의 적극적인 부양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