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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고용지표 부진으로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사실상 내년으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빠른 환율하락 속도에 외환당국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원ㆍ달러 환율 '마지노선' 진입=23일 원ㆍ달러 환율은 5원 하락한 1,055원80전에 마감됐다. 올 연저점인 지난 1월의 1,054원50전에는 못 미치지만 9개월 만에 최저치다. 지난 16일부터 일주일간 외환당국 개입 경계감에 1,060원대 초반에 막혀있던 환율은 전날 발표된 미국 고용지표 부진 소식에 개장부터 하단이 뚫렸다. 그나마 연저점까지 떨어지지 않은 것은 오후 들어 중국 경기부진 소식에 낙폭이 줄어든 덕이었다.
원ㆍ달러 환율이 1,050원대에 진입하자 시장에서는 '이제 뒤집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연저점은 물론 1,000원 하향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뜻이다. 외환시장의 쏠림현상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ㆍ달러 환율은 2011년 8월 일시적으로 1,040원대 진입했던 것을 제외하곤 1,050원선이 무너지지 않아왔다. 중소기업들이 채산성 악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도 1,050원대다.
하지만 현재 미국 고용지표 부진과 테이퍼링 연기, 사상 최대 경상수지, 39일째 이어진 외국인의 주식순매수, 외화예금 등 국내외 조건이 원화강세에 절대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인도 등 신흥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한국은 되려 외국인 투자자가 몰리면서 사상 최대 주식순매수 행진이 그치지 않고 있다. 외환당국이 불안한 눈길을 보내는 것도 투자자금 규모가 불어나면서 핫머니 유입이 동시에 늘고, 향후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000원대 진입 앞두고 고민 깊어지는 외환당국=시장 분위기는 이미 하락 '방향'은 틀 수 없고, '속도' 조절이 그나마 외환당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과도한 수출 중심 경제성장으로 틀어진 방향을 내수로 물꼬 트기 위해서라도 더는 '고환율'을 고집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환시장의 한 딜러는 "원화만 홀로 강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통화가 미국지표에 전체적으로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라 대세를 거스르긴 어렵다"며 "당국이 속도조절에 나설 수는 있겠지만, 방향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내려설 것이라는 분석도 속속 나오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내려섰던 것은 2008년 4월로, 글로벌 위기 발생 이전이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연저점 붕괴 이후는 1989년부터 시작된 장기 추세선에 근접하면서 985원선까지도 하락할 수 있다"며 "외국인 주식순매수 행진이 최소한 올해 말까지 지속되면서 환율 하락을 이끌고, 수출업체 네고까지 가세할 것을 감안하면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8일 모건스탠리는 "원화 가치는 과대평가 레벨보다 여전히 한참 낮은 수준"이라며 "원ㆍ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시장개입이 있을 수 있지만 원ㆍ달러 환율 1,000원 붕괴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심리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자 정부는 "예의주시 중"이라며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정부가 강도 높은 경고를 시장에 날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지난해 말 원화강세가 급격히 진행될 때도 정부는 구두개입 수위를 한 단계씩 높이며 대응했다. 외환당국은 지난 18일 "최근 외화자금 유입과 환율 움직임에 역외 투기요인이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공식적인 구두개입에 나선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