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이라크 재건을 둘러싼 미국-유럽간 갈등이 경제 전쟁이라는 제 2라운드에 진입했다. 이번 라운드는 단기전에 그쳤던 전쟁과는 달리 전후 이라크 재건의 유리한 샅바를 잡기 위한 복잡하고 지리한 신경전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미국 프랑스 등 갈등 당사국의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는 12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선진국 모임인 G-7 회의를 갖고 이라크 채무 처리 문제 등 주요 이슈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은 이라크 재건을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합의했을뿐 구체적 내용이나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번 회의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시작임을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이라크 채무 논란=가장 첨예하고 민감한 이슈는 많게는 30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 채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바그다드가 미군의 손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프랑스 러시아 등 모든 채권국은 이라크 채권을 전부 또는 일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에 대해 푸랑수아 리바소 프랑스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채권 포기 요구는 논쟁할 가치가 없으며 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유전개발권 등 상당한 독점사업권을 갖고 있는 러시아는 채권 포기를 검토하는 대신 독점사업권은 유지해야 한다며 이해득실 계산에 들어갔다.
이라크 채무 문제는 원래 이번 G-7 논의 내용이 아니었지만 미국의 제안으로 갑자기 의제에 추가됐다. 그만큼 미국이 급선무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단 G-7 회의에서는 오는 6월에 열릴 선진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서 이라크 채권 문제를 논의하자고 일단락짐으로써 문제 해결 자체를 연기시켰다.
◇러-불-독, 제 2 대미 전선 구축=미국은 승전국으로서 마땅히 이라크 재건은 미국 주도하에 이뤄질 것이며 “반전국은 스스로에 걸맞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라며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배정은 나라별로 다르게 진행될 것임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 등 3국 정상은 12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시에서 회담을 갖고 이라크 재건은 UN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라크 사태를 포함한 모든 국제 문제는 UN이 중심이 돼 해결해야 한다는 3국 정상의 공동 합의는 우선 국제질서가 미국 주도로 끌려가는 것을 막겠다는 의사 표시로 분석된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이라크 재건을 위한 UN 안보리를 채택하는데 동의함으로써 유엔 결의 없이 독자적으로 이라크 재건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UN 안보리에서 미국의 역할 등 핵심 골자가 어떻게 조각될지 여전히 논란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