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이 7일 자율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정되면서 채권단은 조만간 정밀 실사를 거쳐 동부제철의 출자전환 규모를 결정할 방침이다.
동부제철의 여신 규모가 워낙 커 대규모 출자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김준기 동부 회장이 동부제철의 경영권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STX 자율협약 과정에서도 채권단은 강덕수 회장으로부터 경영권 포기 각서를 받고 무상감자와 함께 출자전환을 단행, 결국 강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동부그룹의 경우 STX와는 상황이 다르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출자전환 과정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금융 당국 고위관계자는 6일 "적어도 한 달 이상 회계법인의 정밀 실사를 받아야 대략적인 출자전환 규모를 추산할 수 있다"면서 "여신이 2조원이 넘고 영업이익 흐름이 개선되지 않는 만큼 출자전환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동부제철의 자본은 약 1조2,000억원이고 부채가 약 3조4,000억원, 총 자산은 약 4조7,000억원 규모다.
자본이 변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동부제철의 부채비율을 채권단의 정상 기업 가이드라인인 200%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약 3,4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이 필요하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동부제철이 철강업계의 통상적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인 0.6% 수준으로 자본가치를 인정받고 이후 채권단에서 3,4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동부 대주주 측 지분은 현재 43% 에서 30% 수준으로 떨어지겠지만 경영권은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현 상황이 변동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계산된 동부 측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회계법인 실사를 거치면 동부제철의 현재 자본가치가 하락, 부채비율이 더 높아지면서 출자 전환 규모는 조 단위로 커질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채권단이 통상적인 구조조정 방식에 따라 무상감자 후 출자전환을 단행할 경우 동부 측 지분은 한자릿수까지 떨어진다. 채권단은 이미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의 차등 감자 등을 검토하고 있다.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기업에 대주주 100대1 감자 등이 추진되면 김 회장 등 동부 측의 현재 지분은 의미가 없어져 경영권은 당연히 유지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부제철과 채권단 간에 진행하는 구조조정이 워크아웃이 아닌 자율협약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경영권을 뺏는 수순으로 출자전환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류희경 산업은행 수석부행장도 "우리의 목표는 경영권을 뺏는 것이 아니라 동부의 정상화"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대규모로 무상감자가 진행될 경우 오히려 청산가치가 높아져 동부제철이 법정관리를 택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일각에서는 동부제철이 '무상감자→출자전환→재매각' 식의 일반적인 시나리오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기가 애초부터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채권단과 동부 측이 계속해서 김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화진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동부CNI 등 동부 대주주 측이 들고 있는 동부제철 주식 등은 거의 90%가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어 추가 담보를 내놓지 않는 이상 무상감자가 힘든 구조"라며 "산은이 계속해서 동부 CNI 등이 아닌 동부화재의 지분을 담보로 요구하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동부제철 최대 주주인 동부 CNI의 동부제철 주식은 골든브릿지증권 등에 대부분 담보로 잡혀 무상감자가 추진되면 담보가치가 크게 하락, 채권단 간에도 이견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채권단과 동부 측은 앞으로 자율협약 과정에서도 추가 자금지원의 대가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자금 지원의 명분을 얻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장남의 동부화재 지분 말고는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제철의 경영권을 내놓느냐, 장남의 화재 지분을 내놓느냐의 동부와 채권단 간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