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독일 쾰른에서 열렸던 쾰른아트페어에서 최고가(150만달러)로 나와 콜렉터들의 눈길을 끈 작품은 톰 베셀만의 `The Great American Nod No44`로 벽면설치작업이었다. 일반 아파트 정도의 한 벽면 규모로 어느집에나 있을 법한 나무재질의 가구와 옷걸이가 있고 오토바이도 그려져있다. 그 사이에 문도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실제의 빨간색 레인코트가 문짝 못에 걸려져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그림속에 실제 코트가 걸려 있어 늘 오늘을 얘기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공허한 벽면을 장식할 뿐 아니라 실내의 한 부분을 시각적으로 분절하고 대조시키는 효과를 주는 벽화를 현대 미술로 끌어온 톰 베셀만 대표작중의 하나다. 이 작품 시리즈들은 벽면에 영구적으로 부착돼 이동이 어려웠던 과거 벽화와 달리 에디션을 정해 판매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영역을 넓혔다.
현대 벽화는 소재와 기법에서 새로움을 펼칠 수 있어 현대미술의 장르로서 재평가와 시도가 이뤄지는 추세다. 수십년전부터 시도돼 고정 콜렉터를 갖게된 외국 벽면작업이 국내 미술계도 잇달아 기획되면서 벽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
외벽뿐 아니라 내부 흰벽을 장식하고 직접 그림을 그려넣고 있는 서울 대학로 문예진흥원 마로니에 미술관이 그렇고 1층 로비와 2층 벽면을 젊은 작가의 벽화전시장으로 변한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가 있다. 로댕갤러리의 `안규철 -49개의 방`도 관람객을 맞는 첫 작품 `모자`는 다섯 컷의 패턴을 반복하여 벽화로 구현한 것이다.
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도 지난해 국내에 외국 작가의 에디션 벽화를 처음 선보인 `월 워크 1`에 이어 고낙범, 문경원, 서정국, 서혜영, 성낙희, 이미경, 정연두, 홍승혜 등 한국작가 8명의 작업으로 구성한 `월 워크 2`를 11일 연다.
국내 작가가 에디션 개념의 벽화작업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가 정해놓은 규칙과 설명에 입각하여 제삼자에의해 완성되는 제작과정은 작가의 손으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아이디어가 곧 작품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전시장 벽면에 작가들이 그린 그림은 구매자가 나설 경우 작품 당 3~5개의 에디션으로 구매자가 원하는 공간에 설치해주는 방식이다.
전시공간에 맞춘 현지 제작 벽화가 국내미술가에서도 호평을 받으면서 벽면에 라인 테이프를 둘러 건축과 같은 입체감을 이뤄내는 박은선, 흑백드로잉작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서혜영, 흑백의 인물군상을 반복적으로 담아내는 문경원씨 등은 벽화에 어울리는 작업으로 각종 기획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카이스갤러리의 `월 워크 1` 결과 판매된 작품은 없다. 그러나 관람객들의 관심은 높았다. 카이스갤러리측은 관람객을 세부류로 구분했다. 한 부류는 “그런데 작품은 어디있어요?”라며 벽화의 개념이 없었던 관람객, 두번째 부류는 미술관계자로 “좋은 기획전시네요. 즐겁다”라는 전문층, 또다른 부류는 인테리어나 음식점 관계자로 “아이디어 좋다. 우리 그곳에 응용하면 좋겠다”는 실용파들이었다는 설명이다. 화랑측은 “이번 전시가 기존 전시공간의 틀을 허무는 형식적 변호에 그치지 않고 작가들과 관람자들의 미의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술을 현대공간으로 끌어들인 외국작가들의 벽화작품을 선보여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판매가 없었다는 것에 못내 아쉬움을 가졌다.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