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특허권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나섰지만 구글의 행보를 지켜보는 시선에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구글이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는 경영 모토를 잊는 순간 전세계 IT 업계가 떨게 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우려다. ◇구글, 애플에 정면도전 선언=이번 인수는 올 1월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래리 페이지가 주도했다. 그는 구글 창업자로는 처음으로 수장에 올랐지만 전임 CEO인 에릭 슈밋과 비교되며 리더십 논란에 종종 휩싸였다. 최근에는 '스마트 패권'을 노리는 애플이 시시각각 안드로이드 견제에 나서면서 구글의 소극적인 대응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 때문에 구글은 애플과의 전면전에 나서려면 하드웨어 시장 진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적어도 외형에서는 애플과 동일한 경쟁구도를 구축하는 데다 이미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 1위라는 점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모토로라는 미국기업, 특허권, 휴대폰 제조사라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조성은 KB투자증권 연구원은 "구글은 사실상 애플처럼 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과 HTCㆍ소니에릭슨 등 주요 안드로이드 제조사의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야심 본격화되나=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국내 업체에 단기적으로는 이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구글이 모토로라의 특허 1만7,000여건을 확보하면 안드로이드 진영은 특허 공세에 든든한 우군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안드로이드 의존도가 심해지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휴대폰 제조사에 무료로 공급하는 전략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해왔다. 하지만 안드로이드폰이 늘어나면서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삼성전자와 HTC는 독자 사용자환경(UI)인 '터치위즈'나 '센스UI' 등을 앞세워 경쟁에 나섰다. 구글은 그동안 안드로이드폰의 분산화에 우려를 보냈지만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토로라를 통해 차기 안드로이드의 표준을 제시함으로써 휴대폰 제조사를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별도 회사로 운영하고 안드로이드 전략도 기존과 동일하게 가져갈 계획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구글이 이미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든 이상 어떤 식으로는 경쟁관계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장 안드로이드 유료화나 서비스 차별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모토로라를 앞세워 어떤 식으로든 야심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구글의 '공짜 점심'이 '독사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은 "국내 업체들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으로 주요 스마트폰 라인업을 가져가고 있어 스마트폰 운영체제 전략에서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 안드로이드 시장에서 모토로라 우선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안드로이드가 폐쇄적인 운영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삼성 '바다' 운영체제 개방 요구도 커질 듯=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16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소식이 전해진 첫 출근길에서 "이번 인수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며 "삼성은 자체 운영체제가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7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독자 운영체제 바다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바다 운영체제를 탑재한 '웨이브'를 선보이며 지금까지 800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올 2ㆍ4분기에는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모바일을 제치고 5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전체 점유율은 1.9%에 불과해 여전히 안드로이드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LG전자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판매비중이 95%가 넘고 팬택, SK텔레시스, KT테크 등은 100%에 달한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 윈도폰7 운영체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의 바다 운영체제를 개방형으로 전환해달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러 휴대폰 제조사들이 앞다퉈 바다 스마트폰을 출시하면 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도 줄곧 "바다 운영체제를 채택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지만 삼성전자는 정중하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은 "이번 인수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ㆍ아이폰OSㆍ윈도폰의 3파전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하지만 구글이 모토로라를 앞세워 주도권을 내세우면 기존 안드로이드폰 제조사에는 부담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