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고창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넓은 들과 산, 바다가 있고, 황토 흙이라 벼, 수박, 고추, 복분자 등 농사가 잘된다. 고인돌 군락지, 선운사, 모양성, 동학농민전쟁과 항일 유적지 등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음의 안식처인 부모님이 계시고, 선조들의 선산과 독립지사인 증조부님을 모신 도동서원 등 600년 자취가 남아 있다. 시골 마을 송암(松岩)은 고려가 망하자 선조들이 낙향해 소나무를 심고 고인돌만한 바위에 고려곡(高麗谷)이라고 새기며 절의를 지킨 스토리가 있다.
서울에 온지 24년째가 되도록 고향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리다. 한 평생 힘든 농사일 등으로 지친데다 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떠올려서다. 소통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모르는 아버지의 인생 또한 안타깝다. 명절임에도 언제부터인가 시골마을이 휑하게 된 것도 서글프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시골에 가면 언제나 활기차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웃음꽃을 피워준다. 이번 설에는 아이들과 고향 유적지들을 탐방했다. 우선‘왜 국사시간에 향토사를 가르치지 않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국사를 필수로 하는 김에 향토사까지 곁들이면 아이들이 생동감있게 역사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텐데 말이다. 시골은 물론 서울 곳곳도 모두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지 않은가. 과거 속에만 갇혀 있던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E.H 카)”로 거듭나게 할 때다. 을사늑약(1905년) 직후 봉기한 면암 최익현 선생의 호남 의병 발상지인 도동서원과 주변 향교, 각종 유적지를 보여준 뒤에는 아이들에게 한문을 좀더 가르쳐야겠다는 들었다. 우리 말의 70% 이상이 한자로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선비정신이 담긴 한문에 이어 중국어까지 공부하면 금상첨화다.
유적지에 이어 논밭도 둘러봤는데, 동네에서 모두 농약을 쓰지 않고 우렁이 농법으로 논농사를 짓지만 판로가 마땅치 않아 애태우고 있었다.‘농협은 뭐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초등학교도 갔는데, 60명씩 5개반이던 것이 25명씩 2개반으로 줄었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곧잘 눈에 띄었다. 그만큼 시골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지 오래였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돌아오는 농촌’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없을까 고민해봤다.
이러저러한 상념을 뒤로 하고 귀경하는 내내 부모님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짠했다. 이런 아비 맘을 알았는지 몰라도 딸들이 “또 시골가요”라며 팔을 잡아 끈다. 이번 귀향길은 헛되진 않았나부다.
고광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