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인건비 부담 가중… 문 닫는게 낫다"

■ 근로시간 단축 한다니… 속타는 중소기업<br>하청업체 "거래처 잃는다" 발동동… 노동자는 "소득 감소 불가피" 울상<br>휴일근로, 연장근로 포함 반대 55% 전문가 "업종·형태별 지원책 필요"



경기 반월ㆍ시화공단에서 20년 이상 전자기기 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은 최근 회사 경영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난적(亂賊)을 만났다. 최근 정부에서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올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조만간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빠진 것.

이 회사를 비롯한 동종업체들은 빠른 납기를 무기로 그동안 해외 부품업체에 비해 우위를 가졌었는데 근로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되면 거래처를 수성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대기업 하청업체인 A사는 주문량이 늘 들쭉날쭉하다는 점에서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면 납기를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또 업무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숙련공에 의지하기 때문에 기계설비가 추가되지 않는 한 정부의 바람처럼 신규채용 할 형편도 못 된다.


A사장은 "빠른 납기로 승부해야 하는 우리 같은 소규모 하청업체들은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대기업 거래처를 해외로 잃어버려 곧바로 매출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게 돼 있다"며 "하청업체라면 다 비슷하겠지만 인력을 더 뽑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회사 운영을 그만 둘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근로시간 단축 타격 심해"=최근 정부가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고 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산업 현장에 있는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된 지원책도 없이 법을 바꾸려 한다"며 강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주문량 예측이 쉽지 않은 영세 하청업체나 대기업과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은 법 개정에 따른 직격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소수 숙련공 의존도가 높거나 교대를 통한 연속근무가 필요한 회사일수록 근로시간 단축안에 대한 타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15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휴일근로의 연장근로시간 포함에 대해 중소기업의 55.6%가 도입 반대를, 39.4%가 규모별 단계적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경북 구미공단의 한 화학업체 관계자는 "근로시간 관련 법이 바뀌면 직원이 200여명 수준인데 지금의 10%인 20명 이상을 더 뽑아야 한다"며 "이 경우 인건비와 제반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이익은 20% 이상 줄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경쟁 대기업들은 제품이 다양하고 사업이 다각화돼 있어 근로시간 단축을 받아들일 여력이 어느 정도 있겠지만 우리 같은 영세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고스란히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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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관계자도 "고정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물량은 정해져 있는데 근로시간을 줄이면 결국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서 설비 증설이라도 지원해주면 모를까 근로자 1명당 담당할 수 있는 설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고용을 추가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근로자들 임금삭감 불안=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불안감은 중소기업 사측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까지 덮치고 있다. 작은 기업일수록 기본급이 적어 연장근로 수당으로 소득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소득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염색업체 직원은 "연장근로시간을 한정을 하면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가 없어 임금이 월 200~250만원에서 160만원까지 줄게 된다"며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여건도 되지 않는 데 근로 기회를 빼앗기는 셈"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교대근무를 진행하는 한 섬유업체 과장은 "노동조합에서 근로자 수를 더 늘리더라도 기존 임금은 보전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당장 회사 이익이 줄어들 상황인데 현실적으로 임금을 깎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같은 중소기업이라도 하청이 아닌 자체 판매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계획생산이 가능해 그나마 사정이 낫다. 동종사업이라 하더라도 업태에 따라 타격이 다른 셈이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기계부품 업체 대표이사는 "우리는 중소기업이라도 하청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영업을 하기 때문에 초과근무 단축 실시에 대한 영향이 거의 없다"며 "생산량을 계획해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과 사정이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ㆍ사회정책연구 본부장은 "대기업은 당장이라도 근로시간 변경을 적용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규모별로 단계적 적용을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며 "뿐만 아니라 아직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검토는 못하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각종 서비스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인력ㆍ기술연구실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국민경제 차원에서 꼭 추진돼야 할 사업은 맞지만 중소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생산성 향상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업종ㆍ형태별로 상황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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