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신청하기 전까지 엔론은 위대한 기업으로 인식됐다. '포춘'은 6년 연속 엔론을 미국 최고의 혁신기업이라며 칭송했고, 노벨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에게 '엔론 공로상'을 수여했으며 제3세계 국가에 최첨단 발전소를 세우고 브라질 밀림을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15년 만에 1,700%의 초고속 성장을 이루고 매출액 1,010억 달러를 달성했으며 자산 473억 달러를 보유했던'에너지 제국'엔론은 6년 연속 미국인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선정된 미국경제가 자랑하던 규제완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초고속 성장의 배경에는 탄탄한 재무구조와 뛰어난 기술력이 아니라 모럴헤저드와 장부조작, 막강한 로비력, 정치권과의 유착 등이 있었다. 엔론은 1989~2001년 까지 600만 달러가 넘는 정치자금을 건냈고, 정치권은 엔론의 막강한 배경이었다. 아직까지도 정치권이 엔론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는 이유다. 2001년 엔론의 비리를 가장 먼저 기사화했던 '포춘'지의 기자 베서니 맥린은'엔론은 과대평가되었는가?'라는 기사를 썼고 이에 각 매체가 잇따라 엔론의 초고속 성장에 의문을 던지면서 엔론은 파산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급기야 9.11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2001년 12월 2일 310억의 빚을 떠안고 파산했다. 베서니 맥린과 같은 포춘지 기자 피터 엘킨드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의 몰락'이라 불리는 엔론 스캔들을 파헤쳤다. 저자들은 법정 기록, 회의록, 인터뷰, 개인 이메일 등 1년 반 동안 엔론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인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방대한 양의 책으로 펴냈다. 이야기는 클리프 백스터 엔론 노스 아메리카 CEO가 권총으로 자살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엔론의 사장이자 최고운영책임자인 제프 스킬링의 최측근이자 거래 개발자였다. 엔론 창시자 켄 레이 부터 정치인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은 소설처럼 세밀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저자는 엔론의 이야기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아직도 기업 비리의 대명사로 남아있는 엔론의 파산은 미국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직원들은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고, 엔론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줬던 금융기관들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책은 엔론 파산의 이야기를 통해 한 대기업의 몰락이 나라와 개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 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2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