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품목·계층 구분없이 돈 안쓴다

냉장고·화장품 출하 급감, 백화점매출 감소폭 커져

주부 윤모(35)씨는 보름 전 스킨을 사기 위해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용기에 조금 남은 몇 방울이라도 털어서 써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사흘 후 찾은 곳은 명동의 한 저가 브랜드 매장. 30분여 고민 끝에 3,900원짜리를 골랐다. 생활이 어려워도 스킨만큼은 2만~3만원짜리를 사용하던 게 불과 엊그제 일 같다. 통계청이 내놓은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소비위축 현상이 전계층과 전품목으로 확산 중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도소매판매 증가율의 경우 지난해 2월 이후 끝없이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다. 전달에 비해서는 0.4%나 줄었다. 내수용 소비재는 더욱 심각하다. 승용차(-21.1%)와 냉장고(-24.8%) 등 대표적 내구 소비재들의 출하가 수직 하락했다. 비내구재도 등유가 22.3%, 화장품이 10.9% 줄었고 가공어패류도 28.1%나 급감하며 의식주 전부문에서 소비위축 현상이 드러났다. 대신 지갑이 얇아지고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소주 출하는 43.8%나 늘었다. 백화점 판매량은 걷잡을 수 없이 내려앉고 있다. 5월 주요 백화점 매출은 전달에 비해 감소폭이 더욱 커졌다. 이달 들어 26일까지 매출은 ▦롯데 -5.3%(4월 -0.4%) ▦현대 -3.2%(4월 -3%) ▦신세계 -1.3%(4월 1.2%) 등으로 일제히 하강했다. 이러다 보니 2ㆍ4분기 말 회복될 것이라는 정부의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도 한층 풀이 죽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8일 “5월에도 (소비침체가) 지속될 것 같다. (6월 말 회복 기대가) 거짓말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라며 걱정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1ㆍ4분기 국내총소득(GDI) 증가율이 4.6%까지 개선된 만큼 소비회복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하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민간 전문가들의 전망은 더욱 비관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하반기에 소비가 살아날지 아직 불투명하다”며 “배드뱅크 성공 여부와 기업들의 투자계획이 하반기에 얼마나 가시화될 것인가가 소비 활성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와 함께 투자마저도 정부의 낙관론을 비웃고 있다. 이 부총리는 걸핏하면 “투자압력이 매우 커서 투자를 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되뇌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울 뿐이다. 지난 4월 동향만 놓고 보면 흔들리는 돛대(경제)에 칼질을 한 형국이 됐다. 설비투자는 2000년을 100으로 할 때 99.4를 기록, 극도로 부진했던 지난해 4월보다 2.5%가 더 줄어들었다. 건설수주는 14.6% 줄며 넉달째 감소세를 이어가 하반기 건설경기의 본격적인 하강을 예고했다. S그룹의 한 임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간의 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주요 그룹들이 일제히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고 나섰지만 당장 집행으로 이어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경기지수로 본 경제전망도 잿빛 일색이다. 현재의 경기를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는 0.1포인트 감소하며 9개월 만에 감소세로 반전했다. 경기전환 시기를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는 전월 대비 0.1%포인트 증가했지만 항목별로는 좋지 않은 모습이다. ▦순상품교역조건(-0.7%) ▦건축허가면적(-3.4%) ▦기업경기실사지수(-3.0%) 등의 항목들이 감소세를 이어갔다. 수출주도의 경기회복 추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정작 문제는 이번 지표에 고유가와 중국긴축, 미국 금리인상 등 ‘트리플 악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5월 산업활동도 기대할 게 없다는 추론이 나온다. 결국 5% 성장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점점 힘을 얻고 더블딥(상승 후 재하강)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게 지표와 실물에서 본 한국경제의 현 주소다. 잘 나가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회복 대열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현상경기자 hs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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