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소설가 신경숙

"세대 단절 갈수록 커져… 서로의 빛나는 부분볼줄알아야죠"



소통하려면 물러나야하는데 1년 만에 돌아와보니 차이가 더 크게 벌어져
새 단편집 '모르는 여인들' 서로 잘 모르던 사람들이 다른 삶에 위로되는 이야기
온 세계인이 유목민인 시대, 온화한 인간관계 추구하는 한국문학 세계인에 희망줘
"현재 한국 사회에는 경험한 폭이 다양한 세대가 다 같이 동시대를 살고 있어요. 전쟁, 4.19, 80년대 민주화, 200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다 함께 있죠. 사회는 격동적으로 급변하는데 너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다 보니 소통이 단절되는데 이렇게 계속 진행되는 것은 모두에게 힘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통을 하려면 일단 자기 생각을 하나씩 뒤로 물러낼 줄 아는 게 필요한데 (미국에서) 1년 만에 돌아와 보니 차이가 더 크게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 한 해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작가를 꼽는다면 신경숙(48ㆍ사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을 비롯해 31개국에 수출되면서 책과 함께 세계를 누볐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9년 9월 출간 10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한 후 올 들어 해외 수출을 계기로 재조명되면서 18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세대와 인종,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받은 그로서는 아직까지 독자들이 준 관심과 그 잔상에 빠져 있을 만도 한데 새 단편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 펴냄)'을 펴냈다. 소설집으로는 2003년 '종소리' 이후 8년 만이다.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 있는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신 작가는 "인간에 대해 절망하던 순간이 생길 때마다 글을 써서 다른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 소설집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며 "소통이 단절된 현대 사회에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부분들을 서로 발견해주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을 모은 것"이라고 새 책을 소개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삶과 작품뿐 아니라 사회와 세계에 대한 생각을 조곤조곤 풀어냈다. 인터뷰 내내 중요하다 싶은 부분에 이르면 마치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듯 단어 선택이 조심스러웠던 그는 그만큼 섬세하고 진중했다. "현대 생활이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너무 빨리 변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정신이 못 따라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사람들이 매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일은 기억을 잘하는데 인간적인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들은 어제 일이라도 기억을 잘하지 못하지요." 신 작가는 빨리 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머물 곳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로 상징되는 어떤 것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어 '온 세계인이 유목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태어난 곳을 떠나 대도시에서 살고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자기가 태어난 곳을 먼 데서 바라보지요. 단순히 고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거예요. '마음의 핵'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걸 찾기 위해서는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속도에 모두가 노출돼 있다 보니 일상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던 소중한 것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게' 된 거지요." 새 단편집 '모르는 여인들'도 마음 둘 곳이 없어 떠도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2003년 발표된 '화분이 있는 마당'부터 2009년 작 '세상 끝의 신발'까지 총 7편의 소설은 6년에 걸쳐 쓰인 작품들이지만 결이 모두 한 방향이다.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삶에 위로가 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내용이다. "저는 문학 자체가 원래 소외되고 무언가 (삶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늘 잘 된다면 문학이 필요했을까요? 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저 사람이 저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죠. 하지만 오히려 수면 위에 부각돼 있는 사람들보다 그들이 중요해요. 그들이 수면 위 사람들을 거울처럼 떠받쳐주고 빛나게 해주기 때문에 세상은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단편 '어두워진 후에'도 포함돼 있다.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고 떠돌던 남자가 모르는 여인에게 조건 없는 환대를 받은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용기를 얻는 내용이다. "우리는 매일 뉴스를 접하고 살면서 누군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그들과 같이 그 아픔을 함께 느끼게 되죠. 내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프고 다친 마음이 글을 쓰면서 조금씩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 읽는 누군가도 그러길 바라는 게 작가의 마음이죠." 이 시대에 힘들고 괴로워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청년들의 문제로 이어졌다. 청년들에 대한 위로와 공감은 올 한 해 출판계의 화두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신 작가는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젊은 층과의 소통은 문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다"며 "젊은 친구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위로하는 일은 그냥 말뿐이거나 겉핥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 한 해 '엄마를 부탁해'의 수출로 책과 함께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는데 "전세계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은 다 똑같았다"고 말했다. 구세대가 겪은 가난은 그야말로 생존의, 사전적인 가난이었다면 지금 젊은이들에게 가난의 의미는 모든 조직이나 시스템이 꽉 차 있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틈이 매우 좁은 곳에서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젊은 층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일까. 신 작가는 "자기 자신이 조금 더 두꺼워지길 바란다"는 말로 표현했다. "쉽게 표면에 드러나는 것, 남들이 하는 것에 따라다니지 말고 정말 자기 자신만의 뭔가를 쌓아놓기를 바란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자신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젊은 층에게 책은 어떤 역할을 할지 묻는 질문에 그는 "책을 읽으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니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나중에 자기 자신에서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이제 많이 읽을 뿐 아니라 많이 쓸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디지털화된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굳이 작가가 아니라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된다는 것. "요새는 음성 통화보다도 문자를 더 많이 하잖아요. 글쓰기 자체가 지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통의 도구인 거죠. 모든 것을 써서 남겨야 하는 시대이고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더 깊어질 수 있는 시대인 셈이지요. 쓸 줄 알기 위해서는 많이 읽는 경험이 쌓여야 하겠지요."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문학 한류를 이끄는 대표주자가 된 신 작가는 한국 문학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한국 문학이 세계인들에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희망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을 처음 보는 사람이 많으니 신선하게 느끼는 것도 있지만 한국 작품에는 온화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작품이 많아요. 우리가 답답해하는 한국적인 인간관계가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엄마를 부탁해'의 세계 진출은 한국에서와 달리 작품에 대한 평가도 새로운 것들을 얻게 된 측면이 많았다고 한다. 신 작가는 "그동안 국내에 있는 독자들은 한국 문학이 너무나 익숙한 세계여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있는데 국적이 다른 독자들을 작품을 읽어내는 방향이 다양했다"며 "작가로서 굉장히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한국 문학은 세계라는 문을 노크하는 상태였다면 이제는 문 안으로 들어가서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이제 해외 독자들까지 생각해야 하는 작가가 됐는데 글쓰기에 달라지는 점은 없을까. 그는 "국경 너머의 독자들에게 작품이 가는 것은 나 혼자의 힘만이 아니라 번역가나 외국 출판사 등의 노력도 중요하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전이나 앞으로나 내 작품을 쓰는 데 정성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답했다. 다음 작품은 내년에 시작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소재나 내용은 아직 작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내 마음속에는 항아리가 여럿 있어요. 그 항아리에 어떤 이야기가 차오르냐에 따라 뚜껑이 열리겠죠. 그 전까지는 나도 어렴풋이 냄새ㆍ촉감 이런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20여년전 구기동으로 이사오며 인연
주민과 호흡하며 작품에도 자주 등장
"작가는 세상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신경숙과 북한산 신경숙 연대기의 시간은 작품을 쓴 연도를 기준으로 돌아간다. 10년 전, 20여년 전 일도 작품을 먼저 기억해낸 후 연도를 되짚어가는 식이었다. 그가 북한산 근처에 살게 된 것은 장편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쓴 뒤 '깊은 슬픔'을 신문에 연재하던 지난 1993년. 당시 구기동으로 이사 오면서 20여년간 이어지고 있는 북한산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당선된 뒤 20대에 등단한 그는 30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북한산과 인연을 맺게 된 셈이다. 그는 틈틈이 북한산을 오르길 좋아했고 북한산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무대가 됐다. 구기동과 평창동을 오가던 그는 6년 전 평창동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리진(2007)' '엄마를 부탁해(2008)'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 등을 탈고했다. "예전에는 평창동에 정치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예술가들이 많이 살죠. 여기가 기가 세서 그렇다네요. " 그는 인터뷰를 진행했던 미술관을 비롯해 집 근처에 있는 미술관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요가도 좋아한단다. 특히 요가 이야기를 할 때는 작품 이야기를 할 때 못지 않게 진지했다. "요가는 인생과 비슷해요. 동작을 똑같이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기까지 과정이 중요한 거죠. 동작을 30%라도 따라 할 수 있다면 잘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몸은 대체로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데 균형이 안 맞는 쪽으로 힘을 분산시켜 밸런스를 맞춰주는 게 중요하죠. " 신 작가는 8년 전 어깨가 아파서 요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가를 한 뒤에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등 장편을 잇따라 집필했으니 긴 호흡의 작품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가를 하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작품 쓸 때는 거의 매일 (요가를) 하죠. 한 시간 정도 몸을 돌봐주고 나머지 23시간 동안은 몸을 혹사시킨다고나 할까요."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ㆍ할머니들과 함께 요가를 한다고 한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작품을 쓰는 데도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르신들은 가슴을 치는 말을 많이 해주시죠. 그분들이 얘기해주는 게 소재가 되기도 해요." '작가는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에는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만 하지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조금만 자기 세대가 아니면 얘기를 안 듣죠. '모르는 여인들' 속 단편 '어두워지기 전에'에 등장하는 여인이 주인공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러지요'라고 말해주는 게 너무 신선하지 않나요. 네 말이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죠. 내 소설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약력 ▦1963년 전북 정읍 ▦1984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겨울 우화' 당선돼 등단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 출간 ▦1993년 한국일보문학상 ▦1994년 '깊은 슬픔' 출간 ▦1995년 '외딴 방' 출간 ▦1995년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1996년 만해문학상 ▦1997년 동인문학상 ▦2001년 '바이올렛' 출간 ▦2001년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2006년 오영수문학상 ▦2007년 '리진' 출간 ▦2008년 '엄마를 부탁해' 출간 ▦2010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출간 ▦2011년 '엄마를 부탁해'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31개국 번역 출간 ▦2011년 11월 아마존닷컴 '올해의책 문학부문 베스트10' 선정 ▦2011년 11월 단편소설집 '모르는 여인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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