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된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을 만나 “한국 인질 22명의 석방을 위해 아프간 정부가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또 “이번 사건은 아프간 국민의 품위에 수치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특히 여성이 납치된 것은 이슬람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백 특사는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현지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된 한국인 피랍자 석방에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다. 백 특사는 또 한국인 피랍자 석방의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알려진 탈레반 수감자 석방문제에 대해 아프간 정부의 유연한 대처를 당부했다. 그는 특히 아프간 정부에 경제원조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탈레반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대표인 무니르 만갈 내무부 차관은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라는 탈레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타임스가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측은 이날 피랍자 석방협상을 재개, 타협점을 찾기 위해 의견을 조율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의 원만한 협상을 위해 탈레반 출신 의원과 현지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들을 참여시킨 새 협상단을 구성, 탈레반과 협상에 벌였다.
한편 탈레반 반군은 30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각 정오)을 인질 석방을 위한 새로운 협상 시한으로 제시했다. 탈레반측은 새 시한까지 한국과 아프간 정부가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질 가운데 `일부'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카림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 지도부에서 '정부'측이 자신들의 요구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지만 그들이 지칭하는 '정부'가 아프간 정부인지, 한국 정부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탈레반 대변인은 “더 이상 협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정부에 석방을 원하는 탈레반 수감자들의 명단을 넘겼으며 이들의 석방이 바로 우리의 주요 요구사항”이라면서 아프간 정부를 압박했다.
협상 결렬 때 무력을 통한 인질 구출작전의 가능성이 흘러나오면서 탈레반들이 인질 억류장소를 수시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전날 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돼 11일째 억류된 유정화(39ㆍ여)씨가 로이터통신과 1분 50초 정도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인 피랍자) 모두 아프다. (탈레반측이 매일 피랍자 가운데) 한명씩 죽이겠다고 위협한다”며 “제발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유씨는 영어학원 강사로 이번 피랍된 봉사단의 영어통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육성공개는 탈레반측이 한국인 피랍자 석방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디는 “인질 22명중 17명이 아픈 상태”라고 전했으며 아프간 정부는 전날 의약품을 탈레반측에 전달했다고 현지 소식통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