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초 정부는 교육계로부터 사상 초유의 항명 사태에 휘말렸다. 당시 정부가 사립학교 교직원들에 대한 퇴직수당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사학재단들에 수당 재원의 일부를 분담시키도록 한 것이 발단이었다. 절반이 넘는 사학재단들이 '돈이 없으니 배째'라는 식으로 분담금 납부 단체 거부를 선언하며 3개월가량 저항하자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결국 그해 4월 정부와 여당은 당정회의를 열고 연간 120억원대에 달하는 퇴직수당 분담금을 전액(사학연금공단 분담금 제외) 국가에서 보태주기로 했다. 사학교직원 퇴직수당제도는 이익단체들의 실력행사에 밀려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었다. 이후 20년간 이 제도는 제대로 손질되지 않은 채 유지됐다. 이 기간 중 국민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사학교직원들의 퇴직금으로 충당된 돈은 총 3조원선에 육박한다. 더구나 현행대로라면 7년 뒤인 2020년에는 매년 1조원씩의 국고부담을 국민들이 져야 한다는 게 감사원의 분석이다.
사실 이 제도가 도입될 당시만 해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당시까지는 영세한 사학들의 재정난이 아직 충분히 개선되지 않은 탓이었다. 더구나 그때는 사학교직원들의 퇴직 후 처우가 민간기업이나 국공립학교 교사보다 못하다는 동정론이 우세했다.
이 과정을 이해하려면 사학교직원들의 퇴직 후 보장제도들의 변천사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원래 사학교원들은 1961년부터 일반 민간기업처럼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제도를 적용 받아왔다. 그러나 당시 사학들의 영세성, 재정난으로 인해 퇴직금을 못 받는 사례가 속출하자 정부는 공무원연금법을 벤치마킹해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을 제정했다. 사학연금제도상의 퇴직급여(일종의 연금형태)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다만 사학교원들은 여전히 퇴직수당(퇴직 일시금)을 받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민간근로자들은 1988년 국민연금법 시행으로 연금과 일시금 형태의 퇴직금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0년대 초 사학연금에도 퇴직수당제도를 도입하기로 한다. 공무원 연금법이 벤치마킹됐다. 물론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 퇴직수당은 국가 예산으로 지원되는 데 비해 당초 정부가 구상했던 사학연금 퇴직수당은 정부 예산이 아닌 사학이 분담하는 방향으로 짜여졌다. 이것이 결국 사학재단 등의 목소리에 밀리고 만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과거에는 사학재단들 대다수가 영세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며 퇴직수당 정부 분담금 제도 수술 의지를 다졌다. 그는 "아직 고등학교 이하에서는 사학 재정이 여전히 어렵지만 대학의 경우는 형편이 나아져 수익을 내는 곳이 많다"며 우선 대학에 대한 분담금 지원부터 단계적을 줄여 폐지할 것임을 예고했다.
감사원이 지난 2011년 사학연금공단 재정운용 실태를 들여다본 결과에서도 법인 기본금 1,000억원 이상인 서울 지역 사립대 24곳 중 절반인 12곳이 정부 지원 없이도 퇴직수당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재단은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기대어 교직원들의 퇴직금을 조성했던 셈이다.
정부 국고에 기댄 대학 등의 의존성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산학협력 등의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자금이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산학협력 지원 예산도 매년 지속적으로 늘어 2011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4조4,345억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산학협력이란 정부와 민간의 투자가 함께 이뤄져 연구개발 능력 등을 키우자는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산학협력 사업비(산학협력단 운영수익)의 거의 80%에 육박하는 정부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업비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감사기관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기재부 관계자는 "산학협력에 대한 정부 지원도 사업 성과 등을 엄격하게 판단해 불필요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예산절감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퇴직수당 분담금과 산학협력 지원금 수술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하다. 우선 이해 당사자인 학교 재단들의 반발과 교직원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정치권 일부가 표심이나 로비의 영향으로 가세한다면 정부의 입법 및 예산심의 과정에서 파열음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따라서 정부가 정책 추진과정에서 사전에 충분한 국회ㆍ부처 간 의견조율 과정을 거치고 대국민 계몽에도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