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세종대왕의 항일투쟁

지난밤 큰 별 하나가 빛을 잃으며 떨어지는 것을 본 연나라의 사마중달(司馬仲達)은 제갈공명이 사망했다는 확신을 갖고 모든 군사를 이끌고 촉나라 군대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사가 오장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산 뒤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더니 촉군이 되돌아서서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촉군의 중앙에는 죽은 줄만 알았던 제갈공명이 깃털 부채를 들고 네바퀴 수레 위에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언어 잃으면 민족독립도 없어 사실은 죽음을 예감한 제갈공명이 사람을 시켜 만들어둔 나무인형이었지만 그것을 본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것으로 알고 혼비백산해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고 말았다. 며칠 뒤 촉군이 완전히 물러가고 나서 텅 빈 진영을 본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에 속은 것을 알고 통탄을 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사량유의(死亮有懿), 즉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고 비웃었다. 이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죽은 세종대왕이 산 일제를 상대로 항일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세종대왕이 돌아 가신 게 언제인데 그 따위 말 같잖은 소리를 하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항일투쟁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세종대왕이 항일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이 항일운동에 기여했다는 것이 맞다. 우리글, 우리언어에 익숙해 있는 조선인들이 생소하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일본말 사용을 강요당했으니 백성들의 심정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 그러한 국민들의 심정이 독립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도록 했으며 항일투쟁을 하지 않으려야 아니할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다른 사람의 피나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의 몸에서 나타나는 거부 반응과 유사한 것이다.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자는 민족 상호간에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민족의 독립성과 고유성을 확보해주기도 한다. 민족 고유의 언어가 없으면 민족의 자주독립도 보장할 수 없다. 이러한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만주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이제 만주 지역에서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흔적과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옛 고구려 지역은 한자문화권으로서 한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이민족인 중국의 지배를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고구려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 땅이 중국 땅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직도 옛 고구려 지역에 한글이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면 고토 회복도 꿈꿔볼 만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극소수 조선족을 제외하고는 그곳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한글은 남의 글, 남의 문자인 셈이다. 민족 고유의 언어는 그 민족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켜주는 방패이기도 하지만 다른 민족과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 올바른 한글사용 정책 필요 이와 같이 언어에는 보이지 않는 힘과 영향력이 있다. 언어 속에는 시간과 공간을 누비는 공통의 정서가 있고 정신이 있다. 그런데 한글, 즉 항일투사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초등학생이나 중ㆍ고등학생은 물론이요,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조차도 문법적으로 말도 안되는 한글을 구사하고 있음을 볼 때 걱정이다. 맞춤법도 엉망이고 틀리는 것은 다반사이다. ‘잡귀(雜鬼)’를 ‘잡기’로 쓰는 공중파 방송, ‘취소’를 버젓이 ‘최소’라 쓰면서도 틀렸다는 것을 모르는 신문도 있다. 내용을 알아볼 수도 없는 채팅 용어, 핸드폰 문자메시지 용어를 남용하는가 하면, ‘하여’ ‘혹여’ 등 불완전하고 어색한 문장을 쓰는 드라마가 안방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남북 문제, 사회 문제, 반미자주도 좋지만 올바른 언어정책을 수립하고 일관되게 시행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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