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또다시 불거진 복지 논쟁


박순일 한국사회정책연구원장


서울 충무로 신문사 앞에서 젊은 여인이 급한 사정이 있어 자일리톨 껌을 팔고 있다. 동대문에 가면 허리가 활자처럼 돼 앞을 보지 못할 노파가 검은 비닐 보따리를 들고 서성거린다. 이들이 요즘 들어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벌이는 증세니 복지니 하는 말을 이해할까. 지금도 많은 서민은 돈이 없어 병 치료를 못하고 미루고 있고 종로의 쪽방과 중계동 달동네에서는 겨우 추위를 피하며 살아간다.


복지도 경제에 맞춰 OECD수준으로

그 사람들은 저들의 복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하고 관계없는 일인데 왜들 저러지 하고 분노하거나 관심을 끊고 살 것이다. 1980년대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복지의 필요성이 강조돼왔지만 지금처럼 복지의 의미가 불분명해진 적은 없다.


10~20년 전만 해도 어려운 사람들의 생계·의료·주거·교육과 행동이 불편한 자나 취약계층에 대한 개인 서비스 등의 사회적 도움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쉽게 이해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부 복지예산이 2000년에 비해 4배 정도 증가했지만 복지가 모자라니 부유세나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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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말하는 복지의 부족이 결국 필요하지 않은 중상류층 가족에게도 보육, 기초연금, 급식, 반값 등록금 등의 복지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면, 수조원에 이르는 많은 일반인들의 세금이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보조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면 우리 사회의 춥고 어두운 그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걷어야 할 많은 세금을 이런저런 이유로 걷지 못하고 소위 계층 갈등을 조장하는 부유층을 향한 조세수입 증대로는 현 단계의 복지수준도 충족시키지 못할 것임을 알지 못하면서 현재 벌이고 있는 법인세 논쟁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연말이면 불요불급한 각종 정부 사업 및 기타 예산들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담합하는 바람에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비판을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복지논쟁은 지금과 달라야 한다. 이런 복지가 복지가 잘돼 있는 유럽 대륙의 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고 그 아래의 어떤 수준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중복지든 적정복지든 우리가 자랑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서의 체면을 유지하는 수준이 되려면 사회지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OECD 평균인 20% 정도는 돼야 하고 이 중 고령화로 자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지출의 증가분 약 6~8%포인트 정도를 제외한다 해도 GDP의 3~4% 전후가 되는 국민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보다 소외층 더 배려해야

이는 OECD 기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 서비스 및 주거 서비스 확충과 노인·장애인·여성 등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 증대에 필요한 자금이다. 사회보험의 적자재정은 정부 지원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자체 조달된다 해도 우리나라 수준에 걸맞은 복지재원을 확보할 여러 방법이 합의돼야 한다.

다시 불붙을 복지 논쟁은 정치인들과 일부 논객들의 공허한 갈등보다 국민의 피부에 닿고 경제와 더불어 복지도 OECD 다른 국가에 부끄럽지 않고 모범이 되기 위한 고귀한 토론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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