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조피디의 Cinessay] '1번가의 기적'

착한 사람들이 만든 따뜻한 기적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아름답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말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해야한다는 것에는 그렇게 고생하면 결국은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는 경험적 보장이 깔려 있기에 우리가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요즘처럼 태어나면서부터 경제적 계급이 갈리는 세상에서는 젊어 고생은 희망을 앗아가기 쉽다.

하지만 가난이 주는 선물도 있다. 그건 ‘가족애’다. 100%야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면 부모님 고생하는 것도 많이 보고 형제들과 같은 고민을 하며 자라기 때문에 철이 일찍 들고 ‘성공’의 목표가 가족의 행복인 경우가 많다. 가족애만한 강렬한 에너지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가난에 기죽지않고 꿋꿋하게 현실을 이겨내는 젊은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1번가의 기적>(2007년작)도 보는 내내 울다 웃다 하면서 참 행복했다.


철거전문 깡패 필제(임창정)는 가난한 청송마을로 늘 하던 작업을 하기 위해 들어온다. 피도 눈물도 없어야할 양아치 필제지만, 마을 입구에서부터 만난 꼬마 남매에게 약간의 마음이 움직인다. 엄마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이 귀여운 꼬마 남매의 남다른 형제애는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 축이다. 꼬마 뿐 아니다. 병든 아버지의 못다이룬 챔피언의 꿈을 꾸는 씩씩한 명란(하지원), 하늘을 날고 싶다는 명란의 동생, 가난한 자신을 숨기는 선주(강예원)와 그 사실을 알게 됐지만 넉넉히 품어주는 태석(이훈)의 연애 등 순수하고 착한 청송마을 사람들에게 필제의 마음이 오히려 철거당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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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KBS기자까지 사칭하며 마을에 수도와 인터넷을 깔아주는 선행까지 베풀게 되면서 필제는 청송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슈퍼맨이 된다. 하지만, 필제의 근무태만, 본업망각에 진짜 철거전문 악당들이 마을에 들이닥치고 청송마을은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착한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려준것만으로도 나는 이 영화가 좋다. 그리고 예전에 우리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도 생각난다. “악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있다”던…. 막장 드라마에 늘 등장하는 화려한 집, 언제나 풀메이크업에 불편해보이는 고급의상을 입고 표독스럽고 이기적이고 비상식적인 주인공들에 지친 우리에게 <1번가의 기적>은 그 자체로 위로다. 더불어, 마음 여린 깡패 연기를 이보다 더 잘할수 있을까 싶은 임창정, 관객을 들었다놨다하는 어린 배우들, 진정성있는 여배우 하지원 등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딱 맞는 배우들을 보는 것도 흐뭇하다. 윤제균 감독은 <국제시장><해운대><색증시공>등 히트작이 많은 뛰어난 감독이지만, 유머와 휴머니즘, 현실비판 등을 잘 버무려놓은 이 작품을 베스트로 꼽고 싶다. 세상이 불안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착한 영화가 점점 더 좋아진다.

조휴정PD(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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