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美금리인상 등 위기 불구 정치권 경제활성화 법안은 뒷전
총선 의식 선심성 정책 남발 우려
기업 사기 높이는 입법 추진하고 국가부채 상한선 법제화 통해
재정 건전성 확보에도 힘써야
지난달 24일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11조6,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그 심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절어 있는 우리 정치권의 민낯이 드러난다.
저소득층에 대한 상품권 지급 등 추경의 본질과 관련 없는 선심성 정책을 추경 통과와 연계하겠다며 어깃장을 놓는가 하면, 민원용 쪽지 예산도 난무했다. 조로 현상을 염려할 만큼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는 와중에도 눈앞 여론만 의식하는 구태정치가 재연된 것이다.
이런 포퓰리즘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당장 구조개혁 등 경제 도약을 위한 본질적 처방은 정파적 이해득실에 밀려 뒷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지율에 몸이 단 정치권이 복지 기대심리에 편승해 졸속 공약을 쏟아낼 여지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표 계산에 밝은 정치권이 입으로만 개혁을 외칠 수 있다"며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살얼음판 경제에 또 스멀거리는 포퓰리즘=우리 경제는 안으로는 2%대 성장률, 고령화, 기업 경쟁력 약화 등에, 밖으로는 미국 금리 인상, 그리스 사태,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 등에 휩싸여 있다. 내우외환의 위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법안을 입법화한 사례는 없다시피 하다. 야당은 줄기차게 법인세 인상을 외치고 있고 정작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절실한 노동개혁 등에는 여야 모두 미온적이다. 환부 방치로 새순이 돋지 못하는 사이 포퓰리즘 바이러스는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 불황으로 복지 수요가 증가해 포퓰리즘이 활개칠 토양이 되고 있어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하반기로 갈수록 복지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명분의 포퓰리즘이 득세할 수 있다"며 "이는 결국 재정 고갈, 세금 인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만큼 정치권의 각종 정책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권은 선거철만 되면 무상 복지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을 승리로 이끌었던 무상급식,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기초노령연금 지급, 3~5세 무상보육 공약 등이 대표적이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 지급대상을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서 소득 하위 70%로 축소했음에도 지급액이 올해 10조원에서 2030년 50조원, 2040년 100조원까지 늘어날 만큼 심각하다. 실제 올해 복지 예산은 9년 만에 두 배 남짓인 115조7,000억원으로 불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선거가 끝나면 약속을 깨는 일이 반복되면 정책 신뢰도 추락과 함께 정작 필요한 복지예산은 축소되는 등 비효율도 커진다"며 "경제 여건으로 증세도 어려운 판에 국가 재정을 도외시한 정책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파 초월해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영국 의회는 향후 5년간 21조원의 복지 지출을 삭감하는 개혁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애초 개혁안의 통과 전망은 낮았다. 노동당 의원의 반대가 예견됐기 때문. 하지만 노동당 의원들은 대거 기권해 개혁안 통과를 도왔다. 이런 변화는 5월 총선 때 복지 확대를 내세웠다 대패한 경험에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뒷감당 없는 포퓰리즘이 결코 득이 되지 않음을 깨달은 셈이다.
우리 국가 채무도 2010년 392조원에서 올해 579조원으로 늘었다. 정구현 KAIST 교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정책을 펴면 재정건전성은 물 건너간다"며 "정치권이 '국가 부채가 얼마를 넘으면 안 된다'는 식의 재정 규율부터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렬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 위축"이라며 "조직 논리에 갇혀 기업 의욕을 꺾는 정쟁은 곤란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