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경제문제 해법' 대립각
대다수 실세들 '성장 최우선' 합창속… 李정책위장 "개혁 먼저"
노무현 대통령 집권2기를 맞아 여권 내부에 야릇한 균열양상이 노출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장에서 개혁전도사로 알려져 있는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대통령 지문기구)의 '개혁주창'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경제에 연관되어 있는 대다수 실세들이 '성장'론을 낮은 목소리나마 합창하고 있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권실세들이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어긋난 시그널을 시장에 내보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더니, 최근에는 '추경'이라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대립적인 양상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과천이나 정가의 관측자들은 "이정우 위원장의 목소리가 선언적인 수준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정부가 '성장론'을 앞세워 기업들의 투자에 물꼬를 터줄려는 움직임을 보면서 개혁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자 이 위원장이 뭔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해석이다. 때문에 '이정우 위원장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은 18일자에서 이 위원장이 최근 한 경제전문 주간지에 기고한 글을 소개했다.
이 위원장은 기고문에서 "웬만한 구조적 문제는 이미 다 해결한 선진국도 성장을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구시대의 온갖 부조리와 악습을 청산하지 못한 한국에서 개혁을 미루고 성장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라고 성장우선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또 며칠전에는 추경편성과 관련 "머지않아 경기가 풀리고 봄이 올 것이니 조금만 참아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추경안은 이미 오래 전에 당정 협의에서 합의된 사항이다.
우선 19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 관계 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중소기업 지원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고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신용보증과 정책자금 지원을 대폭 늘리고 4조원 안팎의 추경 편성에 거의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앞서 홍재형 우리당 정책위 의장은 "지금은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추경 확정과 연ㆍ기금의 주식투자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재벌개혁을 강력히 주장했던 정세균 전 정책위 의장 역시 "추경을 하루 속히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번 피력했다.
이쯤되면 당정 모두 추경편성이 필요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신통치 않다는 데 의견을 함께 하고 있는데도, 이 위원장만 낙관론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최근 금융 계열사 의결권 제한과 출자총액제한제 개정과 관련, 여당이 재계와 재경부 입장을 수용함에 따라 시장개혁파의 행보가 당분간 위축될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위윈장이 최근 부쩍 '개혁우선'을 외치고 있는데는 일부 386 세대의 움직임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인 이광재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보다는 실질적인 실용노선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또 "결국 파이가 커야 나눠지는 것이 아닌가 본다"면서 노동조합도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협력적인 정책모델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우리당의 대표적인 개혁론자인 유시민 의원 역시 "현재 기업들의 수익 전망이 불확실한 게 문제"라면서 "정부와 기업이 실용적인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유 의원은 "행정 규제나 공장부지 등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구체적ㆍ현실적 문제가 있다면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최대한 지원해 줘야 한다"면서도 "성장이냐 분배냐는 이분법적인 의제 설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는 실용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시장에서 이 위원장이 코너에 몰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동석 기자 freud@sed.co.kr
입력시간 : 2004-05-19 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