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플론 태국(Teflon Thailand)'. 만성적인 정정불안에도 좀처럼 끄떡하지 않는 태국 경제를 일컫는 말이다. 테플론은 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프라이팬 코팅제로 음식물이 잘 들러붙지 않아 '기적의 코팅제'로 불린다. 지난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번째인 태국의 이번 군부 쿠데타는 이처럼 견고한 국가 경제를 과거와 달리 급격한 침체국면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23일 "어제(22일)의 태국 쿠데타는 과거와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어니스트 보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고문의 분석을 전하면서 "이미 태국의 테플론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이 19번째 쿠데타를 과거 18차례의 사례와 다르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친정부·반정부 간 대립이 어느 때보다 첨예하다는 점이다.
직전 쿠데타였던 2006년 당시 군부는 시골·빈민지역 등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던 탁신 친나왓 당시 총리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친탁신 계열은 이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레드셔츠'라는 이름으로 지지자들을 조직화했고 이들은 별도의 민간인 전투부대를 둘 정도로 성장했다. 씨티난 퐁수히락 출랄롱코른대 교수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쿠데타에 대한 반대 및 저항이 전례가 없을 만큼 강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도시 중산층 및 기존 엘리트 등 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세력(옐로셔츠)은 이번 쿠데타를 친탁신 우위의 현 정치지형을 바꿀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태국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존경을 받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현재 나이는 86세다. 현 국왕의 재가를 받아 정치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시간이 별로 없다.
스티브 비커 리스크완화 컨설턴트는 "국왕이 사망하고 새로운 군주를 받아들이기 전에 '무언가를 고칠 기회가 많지 않다'고 옐로셔츠는 생각한다"며 "그들로서는 헌법과 선거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이 반탁신 계열로 분류되는 군부는 이번 쿠데타 선언 이후 친탁신계 청산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레드셔츠 시위대 지도자들이 구금됐고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이자 이달 초 실각한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군부의 소환 통보를 받고 방콕의 한 군사시설에 출석했다.
반면 반탁신 세력인 상원과 법원은 군부의 엄호 및 국왕의 암묵적 승인을 등에 업고 권력이양 절차를 밟고 있다. 수일 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새 총리를 임명하고 서둘러 헌법개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쿠데타 및 권력이양 작업을 막기 위한 레드셔츠의 지하투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태국의 독립 싱크탱크 기관인 시암인텔리전스유닛(SIU)은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태국이 만성적인 내전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암울한 정치불안 상황은 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테플론 태국의 가장 큰 버팀목인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태국 정부는 이미 올 들어 4월까지 관광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 감소했고 이달에는 10~12%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관광산업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9%를 차지는 태국의 캐시카우(수익 창출원)다. 도요타·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태국에 대한 신규 투자를 재고하거나 미루겠다고 밝히는 등 실물 경제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등 국제사회가 태국에 대한 경제원조 및 군사협력 중단 등 제재를 검토하는 것도 태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우려로 이날 태국 종합주가지수(SET)는 전날 대비 2% 넘게 떨어지기도 하는 등 장중 내내 약세를 지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