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라고 했던가? 중소 납품 업체들이라면 납품처인 대기업으로부터 물량이 끊기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 않는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고, 사즉생의 각오로 딛고 일어나 오히려 대기업의 아성을 무너뜨린 사례가 있다면 경기침체로 힘을 잃은 중소기업인들에게는 반전의 힘을 불어 넣어줄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경남 양산시 교동에 자리잡은 쿠쿠전자.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쿠쿠(CUCKOO) 밥솥은 대기업의 하청 언저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대기업도 두려워 하는 동 제품의 대명사로서 국내 중소기업이 나아가야 할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쿠쿠밥솥의 성공신화를 일군 구자신 사장은 “중소기업이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전문성 확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구사장의 말대로 이 회사는 총 매출액의 6~7%를 매년 연구개발(R&D)비로 쏟아 붓고 있다. 지난해 총 매출이 1.9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00억 넘는 돈이 R&D에 지출된 셈이다.
쿠쿠전자㈜가 중소기업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금액을 R&D에 지출하고도 오히려 해마다 기업수지가 높아질 만큼 성장가도를 구가할 수 있기까지는 대기업의 납품거절로 빚어진 기업의 존폐 위기를 전직원이 `의기투합`의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IMF때이던 지난 98년 당시 모 대기업에 밥솥을 전량 OEM 납품하던 구 사장은 어느날 납품처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경기침체로 밥솥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500여 직원들의 생계가 한 순간에 끊기는 순간이었다.
구 사장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 없다는 생각에 숱한 날들을 고민하던 중 직원들에게 자체브랜드로 마지막 승부를 걸어보자고 제안했고, 모두들 흔쾌히 고생의 길을 따라준 결과 지금의 쿠쿠밥솥이 있게 했다”고 술회했다.
구 사장은 “막상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지만 낮은 인지도 때문에 전직원이 몇 달 동안은 거의 잠도 못자고 발로 뛰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모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자체 브랜드에 대한 구자신 사장의 깊은 애착은 지금껏 쿠쿠전자를 이끄는 동안 그의 경영철학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현재 양산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신 사장은 상의 회원사 CEO들에게 틈만 나면 다음과 같은 중소기업 성공철학을 역설하곤 한다.
“R&D를 통한 투자를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해 기술의 성장은 기업 전문성과 경쟁력 확보에 필요하며 이를 통한 틈새시장의 공략으로 세계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구 사장은 “소비자는 브랜드를 보고 제품을 선택하므로 브랜드파워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독립브랜드를 만들고 소비자에게 자사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브랜드 지론에 따라 쿠쿠 전기밥솥은 현재 약4,000억원대의 국내 시장을 50%이상 점유함은 물론 이젠 대기업들도 따라오기 힘든 `밥솥 명가`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회사는 또 지난해말 중국 칭다오 현지 공장을 준공해 인구의 80%가 밥을 주식으로 하는 거대시장 진출을 본격화 하는 등 `쿠쿠`브랜드의 세계화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구 사장은 “이젠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기보다는 세계 1위를 향해 뛸 때”라며 “반드시 세계의 밥맛을 지배하겠다”고 말했다.
<양산=곽경호기자 kk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