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재현 이어 이석채도 무죄, 이젠 배임죄 바꿀 때 됐다

무리한 투자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죄로 기소된 기업인들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4일 1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에게 고의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앞서 이재현 CJ 회장도 대법원에서 배임죄 적용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받는 등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법원은 이 전 회장이 벤처기업 3곳의 주식을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103억여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에 대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회사의 전략에 부합했다"고 결론 냈다. 재판부는 또 "투자 결정도 충분한 내부 논의와 외부 컨설팅을 거쳤기 때문에 합리적인 경영판단"이라며 "투자기업의 가치를 낮게 보는 의견이 일부 있었다고 해서 배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회장에 대한 수사는 애초부터 '기업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는데 검찰에서 범죄 입증이 쉽지 않자 그나마 손쉬운 배임 혐의로 걸었으나 결국 무고한 사람만 괴롭혔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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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기업인의 자율적인 경영판단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의 경영판단은 고도로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임에도 결과가 잘못됐다고 무리하게 배임죄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그러잖아도 산업계에서는 경영 실패가 아닌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한 의도적 행위만 문제 삼도록 상법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달라고 호소해왔다. 일본이나 독일은 개인 이득을 취하거나 명백하게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의도가 있을 때만 처벌하는 방향으로 배임죄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배임죄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보니 기업인들 사이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는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다.

현재 국회에는 명백한 고의성이 있을 때만 경영자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무분별한 배임죄 적용을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왕성한 기업활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기업인이라고 해서 일반에 비해 더 가혹한 역차별을 받는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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