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되레 지팡이를 들고 큰소리치는 상황을 적반하장이라 한다. 인간관계에서나 사업을 하다가 혹여 이러한 상황과 맞부딪치면 당사자로서는 억울하고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지식재산권 분야에는 도둑이 주인을 나무라는 이런 적반하장이 없을까.
필자는 적어도 '상표'에서 적반하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상표를 잘 쓰고 있는데 엉뚱하게 다른 사람이 먼저 상표를 출원해 등록 받고 더 이상 그 상표를 쓰지 말라며 경고장을 보내면 원래의 상표사용자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들이 상표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먼저 상표를 출원한 사람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선출원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표는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고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상표법은 물리적인 상표라기보다는 상표에 체화된 신용을 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상표를 먼저 진실 되게 써온 사람이 상표권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선출원자에게 상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의로 상표를 사용해왔고 단지 절차를 몰라 상표출원을 안 한 사람은 보호 받을 수 없는 것인가. 상표법은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내가 사용하던 상표를 먼저 출원해 등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상표를 출원했는데도 상표등록이 거절됐다면 크게 두 가지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상표의 식별력이 없어 상표권을 받을 수 없거나 먼저 출원했거나 등록 받은 상표가 있을 경우다.
식별력이 없어 거절됐다면 다른 사람이 출원하는 상표도 거절될 것이니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거절된 상표는 독점권을 갖지는 않지만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선출원 상표가 있어 거절된 경우라면 따져봐야 한다. 상표를 출원한 사람보다 먼저 그 명칭을 사용해왔다면 계속해서 사용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현행 상표법이 상표를 내가 먼저 사용했고 자신의 상호일 때는 계속 쓸 수 있게 하는 '선사용권'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선출원주의가 갖는 약점에 선사용주의를 가미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 경우 도둑이 든 몽둥이는 주인이 가진 '선사용'이라는 방패에 가로막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패는 몽둥이는 아니므로 다른 사람에게 휘두를 수는 없다.
상표는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표지판과 같다. '상도의를 가진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이 들 때 우리에게는 상표법과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정상적으로 사용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남의 것을 훔쳐 사용하는 것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