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개발은 뒷전인 정치권=여야 모두 정체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지만 공약을 다듬는 일은 뒷전이다. 내실 없이 매번 새 공약을 만드는 일도 문제지만 18대 총선에서 약속한 뒤 지키지 못한 공약을 새 공약인 양 포장해 내놓는 경우도 상당하다.
새누리당은 이날 '가족행복 5대 약속'을 발표했지만 암ㆍ치매ㆍ희귀난치성ㆍ심장질환의 의료비 지원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개혁 등으로 2조원을 마련하겠다는 공약 하나만이 새로운 내용일 뿐이다. 항암제의 건보 적용을 확대(연간 4,000억원)하고 경증 치매를 노인 장기요양 보험에 추가(연간 3,000억원)하며 희귀난치성 질환의 본인 부담을 낮추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부자인 부모가 직장에 다니는 자녀를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내지 않는 문제와 의료 수가를 낮추고 약값을 떨어뜨리는 등의 건보 재정개혁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새누리당은 그 밖에 ▦임금 복리후생에 대한 비정규직 차별 개선 ▦전세자금 이자부담 경감 ▦스펙(학력ㆍ경력 등) 타파 취업시스템 도입 ▦만 0∼5세 양육수당과 보육료의 전계층 지원 등을 우선 달성해야 할 가족행복 5대 약속으로 내걸었다. 또 각각 비례대표 한 명이 한 공약을 전담하는 '공약실명제'도 추진하기로 했다. 공약실명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지난 2004년 천막 당사 시절 활용한 방법이다.
민주통합당은 학부모와 대학생 유권자를 겨냥한 '반값 등록금'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회계부정이나 편법사용에 대한 대책 등 구체적인 방법론은 빠져 있다. 한명숙 대표가 나서 박 비대위원장에게 이틀째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안종범 새누리당 공약소통본부장은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이미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면서 "회계가 불투명한 대학까지 국고로 지원하다 보면 국민 세금 부담이 늘어나므로 대학의 투명한 회계 등을 전제로 30% 인하를 거쳐 궁극적으로 반값 등록금을 실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색깔론 공방만 재탕하는 선거운동=박 위원장은 27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4월 총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야당은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국익을 버리고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한미동맹과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정당과 손잡고 자신들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건설도 모두 폐기하고 있다. 이들이 다수당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믿을 수 있으며 약속을 책임질 유일한 정당은 새누리당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의 쟁점으로 부상한 민주통합당의 '말 바꾸기'를 공략한 것이지만 달라진 내용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민주통합당은 곧바로 반격했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이날 엇비슷한 시각에 열린 총선 정책ㆍ공약 점검회의에서 "박 위원장이 철 지난 색깔론으로 총선을 흙탕물 싸움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면서 "정책선거를 한다면서 이렇게 색깔론이나 들고 나오는 새누리당과 그야말로 살아 있는 공약을 내건 민주통합당과의 차별성을 인지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