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경제수석 내정자 최중경은 누구

성장위한 고환율 소신 가진 "강만수의 복심"<br>환율하락 막기위해 엄청난 실탄투입 '최틀러' 별명<br>초강경 시장개입 부작용으로 두차례 '하차' 경험도


SetSectionName(); 경제수석 내정자 최중경은 누구 성장위한 고환율 소신 가진 "강만수의 복심"환율하락 막기위해 엄청난 실탄투입 '최틀러' 별명초강경 시장개입 부작용으로 두차례 '하차' 경험도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최틀러’가 돌아왔다. 최중경 경제수석 내정자는 섬세하면서도 다소 소심한 듯한 성격과 달리 정책 구사에 있어서만은 강골이다. 구부리면 부러지는 성격 때문일까. 그의 인생은 유달리 부침(浮沈)이 많았다. 그의 인생 출발은 사실 관직이 아니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첫 직장으로 택한 곳은 삼일회계법인의 공인회계사였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이었지만 천재성은 그의 인생을 평범함으로 놔두지 않았다. 행시 22회로 관가에 입문한 그는 줄곧 외환과 금융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옛 재정경제부의 금융협력과장ㆍ외화자금과장ㆍ국제금융국장 등의 이력이 보여주듯 그는 외환정책의 최강자다. 월가에서 한국 재정장관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이름 석 자는 알 정도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는 사실 지난 1991년으로 돌아간다. 재무부 국제금융국 금융협력과 등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던 최 내정자는 당시 국장이었던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보를 만나 신임을 쌓는다. 강 위원장은 야인 시절 쓴 ‘현장에서 본 한국 경제 30년’이라는 저서에서 ‘헌신적인 공무원’으로 최중경 당시 금융협력과장을 으뜸으로 꼽기도 했다. 최 내정자 역시 당시 강 장관과 함께 이명박 정부 초대 재정부 차관으로 컴백할 때 “나는 ‘만수교(강만수)’ 타고 들어왔다. 강 장관에게 충성하는 게 나의 본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두 사람 간의 관계는 각별하다. 최 내정자를 ‘강만수의 복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래서다. ‘강골 최중경’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3년 이후다.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2년 동안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엄청난 실탄을 투하했다. 수출 주도인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환율(저원화)이 필수적이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시장은 ‘최중경에게 맞서지 말라’며 ‘최틀러’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절상을 막는 개입은 얼마든지 무한대로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실제로 그의 시장 개입 스타일은 강도 높은 것으로 유명한 독일 분데스방크를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만’은 화를 불러왔다. 그의 옆에서 정책을 구사했던 한 당국자는 “머리가 워낙 좋아 역외선물환시장(NDF) 구조를 통째로 설계할 수 있을 정도”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초강경 개입으로 환율 하락은 막았지만 파생거래를 하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만다. 그리고 2005년 5월 환율정책라인에서 물러났다. 2005년 7월부터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일하며 잠시 국내 경제현장에서 비껴나 있었지만 그의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은행에 있는 동안 그는 ‘금융 부문 지원전략 임시위원회’를 만들어 금융 현안을 주도했고 세계은행은 그가 만든 금융지원 방식을 ‘초이(Choi) 모델’이라고 이름 붙였다. 후진국 경제 지원 방안과 관련해 탁월한 의견을 내 세계은행 총재였던 폴 울포위츠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세계은행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강 위원장이 인수위원회 경제분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리고 현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발탁되면서 ‘최ㆍ강 라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출을 늘리기 위한 고환율정책을 고집하다가 그해 7월 다시 짐을 싸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장관 발언이 강하면 차관은 호흡을 고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동시에 강성 이미지로 질주해 분담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최 내정자는 이처럼 인생의 부침을 여러 번 겪었고 강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하 직원들 투표에서 ‘인기 상사’로 꼽힐 만큼 조직장악력이 뛰어나다. 그가 지닌 보스 기질과 애국심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부인 김치랑씨와 1남2녀를 두고 있다. ◇ 약력 ▦1954년 경기 화성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하와이대 경제학박사 ▦행시 22회 ▦재경부 외화자금과장 ▦금융정책과장 ▦비서실장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상임이사 ▦인수위 경제1분과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1차관 ▦주필리핀 대사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