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8월3일, 출근길. 시민들의 눈길이 신문 가판대에 쏠렸다. 메가톤급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 가명과 차명예금으로 보유 중인 비자금 4,000억원의 실명전환 가능성을 정권 요로에 타진했다는 것이다. 비보도를 전제로 했다지만 현직 총무처 장관 입에서 나온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설은 전국을 뒤흔들었다. 당장 5공과 6공 쪽에서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문민정부가 구 여권, 즉 민정당 계열의 신당창당설 견제 차원에서 비자금설을 흘렸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파문이 확산되자 김영삼 대통령은 오랜 측근이었던 서석재 총무처 장관을 전격 해임, 개인적인 실수로 돌리려 애썼다. 비자금의 정황이 없다는 검찰 발표도 사건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렸다. 단순한 말 실수로 인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하던 비자금 사건은 두달 보름여 후 다시 불거졌다. 박계동 민주당 의원(현 한나라당 의원)이 통장 사본을 들이대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추가 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로부터 성금 명목으로 4,189억원을 조성했음이 밝혀졌다. 요즘 가치로 치면 최소한 1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나중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도 밝혀져 2,204억원의 추징금이 선고됐다. 두 전직 대통령은 ‘비자금이 아니라 통치자금’이라고 강변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준조세 또는 특혜사업을 위한 급행료와 다름 아니었다. 훗날 공중 분해된 대우와 한보ㆍ동아 등도 수백억원씩을 갖다 바쳤으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는 만무였다. 1997년 외환위기도 갑자기 닥친 게 아니라 여기에서 왔다. 쌓이고 쌓인 부패와 정경유착, 고비용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