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1% 시대가 열린 후 은행이 새로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턱없이 낮아진 은행 예·적금 금리로 '안전 자산'인 개인 고객의 요구불 예금은 빠져나가는 반면 이 돈이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펀드, 주식 등으로 이동한 후 일부가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의 예치금이라는 '불안전 자산'으로 되돌아와 리스크 관리까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후 원화 예수금은 빠른 속도로 투자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의 경우 예·적금, 수시입출금 등을 포함한 원화 예수금은 지난 2월 말 2조53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약 2.36% 빠진 반면 같은 기간 펀드 자산은 1,211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약 5.28% 상승했다.
원화예수금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CMA·펀드·주식 등을 운용하는 증권회사·자산운용사 등의 환매 대비용 단기자금이나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채워지고 있다.
문제는 리스크 관리다. 개인·중소기업이 은행에 맡긴 원화예수금 같은 안전자산이 빠져나간 자리에 금융기관·대기업의 예치금이라는 불안전자산이 채워져 시중은행이 리스크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시중은행이 따라야 할 리스크 관리 권고 사항은 바젤위원회에 명시돼 있다. 바젤위는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를 목적으로 은행이 30일간 심각한 자금 이탈을 겪은 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고유동성자산(유가증권·국고채·채권)을 보유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개발했다. 은행은 올해까지 이 LCR를 80%로 맞춰야 한다.
LCR를 구성하는 요소 중 '이탈율'이 가장 중요한데 개인·중소기업 등이 은행에 예치한 원화예수금과 같은 안전자산 이탈율은 0%다. 2008년 금융위기 사태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개인·중소기업 고객은 갑작스럽게 자금을 빼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증권사·자산운용사와 같은 금융회사나 대기업의 예치금 이탈율은 25~40%에서 많게는 100%까지 매겨진다.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자사의 건전성 유지 내지 필요 자금 수혈 등을 이유로 은행에서 예치금을 바로 빼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가 시중은행에 예치한 일명 도매예금은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자산으로 이탈율을 높게 친다"면서 "이런 자금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 시중은행의 LCR가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당장 LCR 기준을 맞추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저금리 기조가 가속화되면 이 비율을 맞추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걱정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중은행은 LCR를 오는 2019년까지 100%로 맞춰야 한다. LCR는 올해를 기점으로 내년부터 5%포인트씩 늘려나가야 한다.
시중은행의 한 리스크담당자는 "개인 고객으로부터 100을 조달하면 금융위기 상황에도 5만 유출된다고 여겨 그에 상응하는 액수만큼 고유동성자산을 보유하면 되지만 금융기관에서 조달한 돈은 100이 모두 유출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기준금리가 인하됨에 따라 은행에서 예·적금, 수시입출금 자금이 빠지는 것도 문제인데 여기에 바젤3 권고 사항으로 LCR 비중을 2019년까지 100%로 맞춰야 해 은행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