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낮12시30분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연설이 시작되자 월가의 주식ㆍ외환 트레이더들은 일제히 투자 방향성을 공격적으로 바꿨다.
조기 금리인상에 대한 힌트를 줄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과 달리 버냉키 의장이 "경제 회복은 시작됐지만 갈 길은 멀다"며 기존의 팽창적 통화정책을 그대로 끌고 갈 것임을 재차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락세를 보이던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섰고 연설 직전 유로당 1.47달러선까지 상승했던 달러가치는 1.48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이날 월가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워싱턴 경제클럽 연설에서 "미국 경제가 스스로 지속할 수 있는 회복궤도에 들어섰다고 선언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미국 경제가 만만찮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발언 가운데 경기비관론의 톤이 가장 높았다.
이에 따라 일주일 뒤인 15ㆍ16일 개최되는 올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RB는 제로수준의 금리를 동결한 뒤 정책 결정문에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한다'는 기존 표현을 그대로 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날 발언은 최근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는 시장에 '잘못 짚었다'며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그동안 버냉키 의장의 최근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출구 쪽으로 다소 무게중심이 실렸던 게 사실이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뉴욕 경제클럽 연설에서 "달러변동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지난 2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는 "자산 거품을 막기 위해 통화정책 동원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금리인상 시기가 다소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게다가 경기회복의 최대 관건으로 지목되는 고용지표도 지난 4일 '서프라이즈' 수준의 호조를 보이자 조기 금리인상설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버냉키 의장은 고용시장 전망에 대해서도 "경제성장이 지속되면 실업률도 하락해야 하지만 실업률이 떨어지는 속도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느릴 것"이라며 경계감을 늦추지 않았다.
11월 한달치 고용지표만으로 경기회복 궤도에 올라섰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이다. 앞서 지난달 FRB는 경기전망 보고서를 통해 11월 10%인 실업률이 내년에는 9.3∼9.7%로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고용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5∼6년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FRB 내부에서 버냉키 다음의 2인자인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역시 섣부른 경기낙관론을 경계했다.
대표적인 비둘기파(경기부양론자)로 분류되는 더들리 총재는 이날 오후 뉴욕 컬럼비아대 강연에서 "미국 경제는 여전히 취약하고 실업률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한 뒤 "이런 경제상황은 FRB가 당분간 저금리를 유지해야 함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RB가 긴급유동성 공급 장치를 서서히 잠그는 등 출구전략을 준비해왔다"며 "다음 출구는 재할인율 인상일 것이며 12월 또는 내년 초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단기유동성이 부족한 은행에 초단기 자금을 빌려주는 재할인창구는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이용실적이 없다시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