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EU, 에너지연합 설립… 러시아 '무기화 전략'에 맞불

정상회의 성명서 초안

역내 여분 에너지 공유… 장기적으론 시장 단일화

실업률 상승·경기침체로 반 EU정서 위험 수위 이르자 재정정책도 성장 중심 전환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에 맞서 장기적으로 유럽 에너지 시장을 단일화하는 '에너지연합(Energy Union)' 설립을 추진한다. 또 경기침체 지속으로 극우정당이 득세하는 등 반EU 정서가 위험 수위에 도달함에 따라 재정정책을 기존의 긴축에서 성장, 일자리 중심으로 다시 짠다.

로이터·블룸버그 등 외신은 23일(현지시간) 오는 26~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 성명서 초안을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초안은 "유럽은 우크라이나 등 지정학적 사건, 세계적 에너지 경쟁, 기후변화 충격 등에 대응해 기존의 에너지 안보전략을 재고해야 한다"며 앞으로 5년을 대비할 전략적 어젠다를 발표하기로 했다.


특히 초안은 "유럽은 연료와 천연가스에 대한 높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통제권을 쥐기 위해 에너지연합 구축을 원한다"고 밝혔다. 에너지연합은 역내 여분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국가별로 다른 에너지 가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장기적으로 역내 에너지 시장을 단일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EU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의 3분의1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우크라이나를 통해 공급받고 있다. 반면 막강한 구매력이 있음에도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러시아가 지난 16일 가스대금 체납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가스관 공급을 끊었지만 오스트리아는 26일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과 최종 공급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하지만 에너지연합이 성공하면 국가별로 가격전략을 차별화하는 러시아의 분리통치 전략을 무력화하고 협상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EU는 내다봤다. 당초 이 방안은 러시아 옆에 붙어 있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우려가 큰 폴란드의 아이디어였다. 4월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의 독점적 지위에 맞서 유럽이 가스를 공동 구매하며 EU 회원국의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가해지면 함께 도와주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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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단일 감독기구인 '은행동맹'을 추진 중이고 핵발전 연료인 우라늄을 공동 구매하듯이 에너지 분야에서도 단일조직을 만들자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폴란드 외교관을 인용해 "장기적으로 EU가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에너지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려면 시장 투명성 제고, 인프라 확충과 금융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다수 회원국의 긍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에 가입하지 않은 영국이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최종 선언문이 채택될지는 미지수다.

또 EU 정상들은 이번 회의에서 성장촉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재정확대 정책 수립에도 나서기로 했다. 실업률 상승, 경기침체 등으로 각국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기존의 재정긴축 정책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반EU 및 반유로화 정서 확산에 힘입어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 등 극우정당이 약진했다.

더구나 글로벌 경기가 미약하나마 개선 추세를 보이면서 더 이상 긴축을 고집했다가는 유럽만 '나 홀로 섬'으로 고립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이날 민간 시장조사 업체 마킷의 발표에 따르면 유로존의 6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1.9로 전월의 53.2보다 오히려 떨어졌고 시장 예상치인 53.4도 밑돌았다. 반면 미국·중국·일본 등은 모두 예상치를 웃돌았다. 로이터는 "재정위기 이후 예산삭감·세금인상 등에 주력하던 EU의 정책 어젠다가 조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재정취약국이 구조조정을 지속하는 대신 인프라 투자나 연구개발(R&D)의 경우 재정적자 산출시 빼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나라별로 재정정책 원칙을 다르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재정기준 충족시기를 추가로 연기해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EU의 재정규정에 따르면 각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넘지 않아야 하지만 프랑스는 올해 3.9%, 내년에는 3.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초안은 "유럽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취약하고 불균등하다"며 "성장친화적이고 국가별로 차별화된 재정건전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긴축정책을 고집해온 독일도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혁신·연구·운송 등에 대한 성장친화적 투자는 경제발전을 촉진시키고 재정도 건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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