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5월 6일] 돈, 저금리에 길을 잃다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 20조원 가까운 시중자금이 몰렸다. 청약자 가운데는 개인 최대 한도인 55억원을 집어넣은 사람도 상당수였다. 가족 명의로 몇 개의 통장을 만들어 몇 십억원씩 신청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은퇴자금ㆍ적금을 한꺼번에 붓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은행 금리가 워낙 박하고 주택ㆍ토지ㆍ상가 등 부동산시장마저 불안하다 보니 공모주가 돈이 될까 싶어 뭉칫돈이 몰린 것이다. 삼성생명 청약에 20조원 몰려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열기는 돈맥경화에 빠져 있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우리 경제는 지금 유사 이래 최대의 돈벼락을 맞고 있다. 장단기자금 모두 풍년이다. 6개월 이내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부동자금만 지난 2월 말 현재 614조3,600억원이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재정ㆍ통화공급 확대와 금리인하 등을 통해 유동성을 엄청나게 푼 결과다. 여기에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투자가 이어지면서 해외 부문에서도 돈이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다. 돈이 많이 풀려 있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풍부한 유동성이 산업자금화해 생산과 고용이 늘면 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넘치는 돈들이 금융권에서만 맴돌 뿐 생산자금화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경기가 여전히 불투명하니 기업ㆍ개인 모두 안전한 곳으로만 돈을 굴리고 있는 탓이 크다. 그 결과 1년짜리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3%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상대적인 고금리로 인기를 끌었던 저축은행 금리마저 4%대로 하락하면서 금융소득자들은 죽을 맛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6%였으니 물가와 이자소득세를 감안하면 은행에 맡겨봤자 손에 쥐는 이자는 껌값이다. 돈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의 저금리기조는 비정상적이다. 지난 1ㆍ4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동기 대비 7.8%였고 경상수지는 12억3,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외환보유액은 4월 말 현재 2,788억7,000만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에 달했다. 소비자물가는 한은의 관리목표인 2% 중반 수준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기준금리만은 14개월째 연 2%로 금융위기 상황에서 묶여 있다. 기준금리가 기준을 잡지 못하니 자금의 왜곡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돈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은 바로 금리가 왜곡돼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금리를 언제 올리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나 한은은 아직 민간활력의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고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와 중소기업에 미치는 충격이 크기 때문에 2ㆍ4분기 이후 지표를 확인한 후 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저금리 장기화 부작용 해소해야 반면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시기를 놓칠 경우 자산버블 등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금리기조의 장기화로 금리의 가격기능이 상실돼 자원배분기능의 왜곡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돈 값이 너무 헐하다 보니 빚을 겁내지 않는 풍조가 퍼져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도 따지고 보면 과다한 가계부채가 원인(遠因)이라 할 수 있다. 저금리는 기업 구조조정 지연과 금융소득생활자들의 소득감소에 따른 소비부진, 물가불안 등을 야기해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1990년대 초반 일본이 겪었던 유동성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정책당국이 경기회복에만 너무 매달려 저금리의 부작용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책은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를 놓쳐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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