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클릭 이 판결] <6> LBO방식 인수합병

합법-불법 오락가락 판결… 배임죄 논란 키워

"피인수회사 담보로 대출 불구 위험 상응하는 대가 제공 안해"

㈜신한 인수사건 유죄로 판단

한일합성 사건선 무죄 판결

실질적 재산상 손해보다 절차상 위법성 여부만 따져

최근 차입매수(LBO) 방식의 인수합병(M&A)이 배임죄에 해당하느냐를 놓고 법조계에서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모습. /사진=서울경제DB

LBO(Leveraged Buy Out·차입매수)는 기업을 인수·합병(M&A)할 때 인수할 기업의 자산이나 향후 현금흐름을 담보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인수하는 M&A기법 가운데 하나다. 적은 자기자본을 가지고도 큰 기업을 인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기자본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레버지리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높아지긴 하지만, 법인세법상 이자를 비용에 산입해 세금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기에 오히려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많다. 미국·유럽 등의 선진 시장에서 LBO가 일상적인 M&A기법 중 하나로 이용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께를 기점으로 LBO 방식의 M&A가 크게 위축됐다. "성공한 LBO 방식의 M&A라도 피인수 기업에 반대급부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배임죄"라는 대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이후 LBO 방식의 M&A를 시도한 많은 기업인이 배임죄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일견 비슷해 보이는 LBO 방식 M&A라도 어떤 사안은 유죄 판결을 받고 어떤 사안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과연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서부터 불법인가.' 업계 관계자들은 "법원의 기준을 알기 어렵다"며 "오락가락한 판결이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토로한다.


국내 LBO 방식 M&A에 대한 배임죄 논란은 2001년 미국 부동산 업계에서 실력을 쌓아온 김춘환 S&K월드 회장이 당시 법원에서 회생절차를 밟고 있던 중견건설업체인 ㈜신한을 인수한 사건에서 촉발됐다.

김 회장은 ㈜신한을 인수하기 위해 2001년 5월 페이퍼컴퍼니인 S&K월드코리아를 설립한 뒤 신한이 발행할 신주를 인수하기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법원의 허가를 받았다. 같은 해 6월 김 회장은 신한이 발행할 신주 520만주와 신한이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후 350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또 신한이 보유하고 있던 정리채권과 앞으로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다른 금융사에서 32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렇게 670억원을 마련한 김 회장은 신한의 신주 520만주를 260억원에 인수하고, 채권단 보유 주식 511여만주를 양수해 신한의 지분 66.2%를 보유한 지배주주이자 대표이사가 됐다.

자기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 국내 중견기업 하나를 꿀꺽 집어삼킨 김 회장의 수완은 대동강물을 비싼 값에 팔아치웠다는 '봉이 김선달'에 비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검찰이 김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하며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김 회장은 5년에 걸쳐 재판을 진행하고 두 번의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친 끝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0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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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인수자가 LBO방식을 사용하는 경우 피인수회사로서는 담보로 제공된 자산을 잃게 되는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며 "인수자를 위한 담보제공은 피인수회사가 부담해야 할 위험에 상응할 만한 대가를 제공받는 경우에 한 해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인수자가 반대급부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피인수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힌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첫 판례를 내놓은 것이다. 이로써 LBO 방식의 불법성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후 대법원은 '합병형 LBO 방식'인 한일합성 LBO 사건에 대해서는 하급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동양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인 A씨는 2006년 8월 당시 회생절차를 진행 중이던 한일합섬이 1,7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같은 해 12월 페이퍼컴퍼니인 동양메이저산업을 설립해 한일합섬의 신주와 회사채를 5,000억여원에 인수하는 양해각서를 맺었다. 동양메이저산업은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3개 은행으로부터 4,725억원의 대출계약을 맺으며 앞으로 인수할 한일합섬 주식과 회사채를 담보로 제공했다. 2007년 1월 이 자금으로 한일합섬 지분 62.6%를 확보해 지배주주가 된 동양메이저산업은 경영권을 장악, 같은 해 4월 동양그룹의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에 합병하는 것을 의결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동양메이저는 한일합섬 역시 흡수합병한 후 한일합섬이 보유했던 현금 1,800억원으로 동양메이저산업이 인수 당시 금융기관에 빌렸던 채무를 상환하는 데 사용했다.

검찰은 합병으로 한일합섬의 현금성 자산이 유출됐다며 현재현 회장 등 경영진을 배임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1·2심 법원은 "인수·합병을 한 경위와 과정, 이후의 사정 등을 볼 때 절차상의 위법은 없으며 동양메이저가 한일합섬의 기업재산을 탈취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 역시 이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LBO의 배임죄를 따짐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비켜나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승준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LBO 방식 M&A의 불법성을 판단하려면 '담보제공형'이냐 '합병형'이냐를 떠나 피인수회사의 실질적 자산이 유출됐냐에 기준을 맞춰야 한다"며 "판결문 어디에도 자산유출 정도나 합병 비율 등에 대한 재무분석이 나와 있지 않은데 법원이 피인수회사의 재산상 손해에 대해 충분히 심리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합병 직전 부채가 331억여원, 자본 4,357억여원, 자산 4,688억원이었던 한일합섬은 합병 후 1,800여억원의 자산을 인출해 동양메이저의 채무를 갚았는데, 이로써 부채율이 1,013%로 급증한다. 이 교수는 "앞서 담보제공형 LBO인 신한 사건에서 '반대급부가 없을 경우 성공한 M&A라도 유죄'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관점과 비교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인수자의 규모가 피인수자보다 크니깐 손해가 없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가 엿보이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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