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지사에서 사무실 이전을 할 때 저는 컴퓨터를 제일 먼저 챙겼는데 외국 동료는 벽에 걸었던 미술 작품들을 무엇보다 소중히 다루더군요. 그 모습이 생소하고 참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
미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한 정부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서양인들의 문화 양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공자가 아니면 중학교 졸업 이후로는 예술과목과 멀어지는 것이 한국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들의 문화적 소양의 평균 정도라고 본다면 그의 말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인 듯도 싶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 경영자와 각 분야의 리더에게 창의력과 상상력이 중요한 덕목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 원천은 무엇일까. 아마도 바로 예술이 아닐까. 불행히도 학창시절 제대로 된 미술과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세계의 리더들과 어울릴 때 이들과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영어실력이 아니라 문화적인 소양 부족일 듯싶다. 문화적인 교양은 ‘족집게’식 단기 과외로는 충족시키기 어렵다. 작품을 보면서 느낀 감성으로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계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서울명품아트사모펀드’(굿모닝신한증권)와 ‘스타아트펀드’(골드브릿지자산운용) 등 최근 출범한 두개의 공식 펀드 이외에도 5~6명씩 모여 작품을 사고파는 미술투자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또 미술품경매회사와 갤러리 등에는 “돈을 맡길 테니 돈 되는 작품으로 알아서 사달라”는 ‘묻지마’식의 미술품 투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품은 분명 재화의 가치를 갖고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덧붙여 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작가의 영혼이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핵심 잣대라는 것.
미술계로 돈이 몰리는 것은 국내 미술시장의 파이를 키운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지금 벌어지는 미술품 투자 열풍은 작가의 영혼이라는 핵심 가치를 저버린 채 미술품을 물건으로만 바라본다는 데 적잖은 문제가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시립미술관이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처음 시도하는 ‘찾아가는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이 원대한 비전을 내세운 거창한 계획은 아닐지라도 가치를 발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