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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배와 6·25(전쟁)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교회 특강이 11일 밤 알려지며 극우적인 역사의식 논란에 휩싸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뜨겁다. ‘세월호’ 사건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안대희 전 후보자에 이어 자칫하면 또 다시 ‘인사 참사’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문 후보자는 총리 역할과 관련해 이날 “책임총리라는 게 뭐가 있겠나.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해 ‘책임총리제’에 대한 논란도 촉발시켰다. 책임총리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고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안대희 전 후보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정치쇄신안의 핵심이었기에 더욱 관심의 대상이다.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 하에서 최고 권력을 견제하고 분권적 리더십으로 국정을 운영하자는 견지에서 나온 개념이다. 책임총리제 구현을 위해 헌법을 고쳐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립한다.
개헌 없이 정부시스템 변경 차원에서 책임총리제가 논의된 것은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경선이 시작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해찬 당시 총리에게 명시적으로 ‘책임총리’ 지위를 부여하기도 했다.필자는 책임총리제를 위한 별도의 개헌이 필요 없다는 전제 하에 현행 헌법이 요구하는 ‘책임총리’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정부형태로 취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국회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권력구조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취하면서 동시에 국무총리제를 두고 있다.
헌법 제86조2항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조 1항에 따라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것은 국무총리의 헌법적 지위를 논함에 있어 주목해야 할 점이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의 크기는 민주적 정당성에 비례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다. 국무총리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었다는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것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대통령이 장관 등 국무위원을 임명할 때 국무총리가 제청권을 갖는다는 헌법 조항은 국무총리의 견제 기관적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지위에 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국정을 분담한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이 갖는다. 총리의 대통령에 대한 견제권한은 대통령제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제한적 범위에 그친다. 논의되고 있는 ‘책임총리’의 권한도 이러한 헌법 규정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필자는 ‘책임총리’는 국가와 국민 앞에 책임지는 자세로 대통령을 도와 국정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총리, 대통령이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직언할 수 있는 총리라고 규정하고 싶다. 이것이 헌법이 요구하는 국무총리의 모습일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대통령이 나서 ‘국가 개조’를 주창하였다.이른바 관피아 척결, 공직사회 혁신 등이 국가적 화두다. ‘국가 개조’란 거창하게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정도(正道)를 가자는 것이다.
장차 새 총리에게 주어질 역할이 무겁다.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입고 닫힌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적폐들을 명확하게 파악한 후 공직사회부터 개혁해 나아가야 한다. 일단 관피아 척결에 소신 있는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대통령에게도 쓴 소리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굳이 책임총리를 논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책임지는 총리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책임총리가 있기 위해서는 후보에 관한 충분하고 객관적인 다각도의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야당까지 설득할 수 있도록 국정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총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세월호 이후 새로운 나라를 염원하는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길이다. 원칙과 정의가 바로 서고 국민이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