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천하의 사람이 다 내사람

崔禹錫(삼성경제연구소 소장)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감흥이 다르다. 요즘 다시 삼국지를 읽다가 한 빛나는 장면을 재발견했다. 조조(曺操)가 숙적 원소(袁紹)를 관도(官渡)의 싸움에서 깨뜨리고 화북(華北)의 확실한 지배자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조조라면 흔히 좋은 사람 유비(劉備)와 싸우는 간웅(奸雄)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위대한 전략가요, 정치가다. 원소가 싸움에 패하고 허둥지둥 도망간 후 조조는 각료들을 거느리고 적의 본진에 들어간다. 너무 급히 도망가느라 기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그중에 기밀서류가 많았다. 서류중엔 조조 진영에서 보낸 것으로 짐작되는 비밀서찰도 있었다. 그 서찰뭉치를 받자 조조는 그것을 불속에 던져 버린다. 부하들은 모든 서류를 철저히 조사하여 적과 내통한 배신자들을 가려내자고 주장한다. 조조는 『원소의 기세가 한창 오를 땐 나도 두려웠거늘 범인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원소의 눈치를 보고 환심을 사두려는 것은 당연한 것아니냐. 이제 원소가 패해 달아나고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됐으니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사람이다』하고는 서류뭉치를 남김없이 불태우게 했다 한다. 아마 조조의 부하 중엔 그야말로 용궁 갔다온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조조와 원소가 싸울 때 처음엔 원소가 병력이나 명망 면에서 단연 우세했다. 그러나 장(將)의 그릇에 차이가 나는 바람에 결국 조조가 최후의 승자가 됐다. 그 기밀서류를 태우는 장면에서 조조의 포용력과 자신감, 또 전략적 안목이 잘 드러난다. 만약 기밀서찰 중에 조조의 측근참모 이름이라도 나오면 조조의 체면은 뭐가 되는가. 이젠 원소가 없어졌으니 과거 눈치보던 사람들도 자기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라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원소와의 싸움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새 일에 에너지를 집결한다는 높은 차원의 전략도 있다. 그런 계산을 순식간에 마치고 즉각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점이 바로 조조의 위대함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어떤가. 신정부 수립 1년이 지나도 대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때 그대로 편을 갈라 계속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 조조가 비밀서찰을 불 속에 던져 넣은 것처럼 대선 때의 유감을 태워버릴수 없을까.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舊怨)을 잊고 새 일에 매진하게 할 수는 없을까. 삼국지 시대에서 천년이 지났건만 사람들이 벌이는 일은 별로 나아진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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