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에게 술을 따르도록 한 것은 사회 통념상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단체와 여성단체들이 “시대착오적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서울행정법원 행정2부(한강현 부장판사)는 13일 경북 안동 모 초등학교 교감 김모씨가 “회식 자리에서 교장에게 술을 따르도록 여교사들에게 권유한 것을 성희롱으로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상대로 낸 성희롱 결정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언행은 성적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상사로부터 술을 받은 부하 직원에게 답례 차원에서 술을 권하라는 취지였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 성적 동기 유무 등을 종합해 볼 때 원고의 언행이 우리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 용인될 수 없거나 선량한 풍속 혹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회식 자리에 참가했던 다른 여교사들은 원고의 언행에 불쾌하거나 성적인 굴욕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002년 9월 교직원 회식 자리에서 “여선생님들, 잔 비우고 교장 선생님께 한 잔씩 따라 드리세요”라고 말했는데도 여교사들이 따르지 않자 “빨리 술잔을 비우고 따라 주라”고 다시 강요했다.
이에 회식 자리에 있던 한 여교사가 여성부에 시정 신청을 냈고,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남녀차별금지법에 따라 김씨의 언행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뒤 “회식문화를 개선하고 전 교직원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것을 학교측에 권고한다”고 의결했다.
그러나 김씨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술을 받았으면 답례로 윗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 술자리의 예절이라고 생각했다”며 여성부 결정에 불복, 소송을 냈다.
한편 전교조는 이번 판결에 대해 “성차별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시점에 법원의 이번 결정은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여성에게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다음 세대의 교육을 책임진 교사의 권위를 무시한 처사인 만큼 여성부, 여성단체 등과 연대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성단체협의회 은방희 회장도 “이번 판결은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사법부가 성희롱의 조건을 만들어 줬다”고 비판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