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개발 명분 개인권리 짓밟아

■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드러난 사실들<br>보상 요구하고도 국내 사용계획엔 반영안해<br>사망자 1인당 30만원 지급 등 '쥐꼬리 보상'

17일 오전 일찍부터 외교안보연구원을 찾은 시민들이 이날 공개된 한일회담 청구권 문제에 대한 외교문서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연합

경제개발 명분 개인권리 짓밟아 ■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드러난 사실들보상 요구하고도 국내 사용계획엔 반영안해사망자 1인당 30만원 지급 등 '쥐꼬리 보상' 17일 오전 일찍부터 외교안보연구원을 찾은 시민들이 이날 공개된 한일회담 청구권 문제에 대한 외교문서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연합 40년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한일회담 관련 문서가 17일 전격 공개됨으로써 한일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한국정부는 일본과의 협상과정에서 일제 치하에서 강제동원됐던 한국인 피해자 103만2,684명에 대해 총 3억6,400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고도 청구권자금의 국내 사용계획에는 반영하지 않았고 개인청구권도 사실상 포기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상당한 후유증이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한일협정 청구권과 관련된 57권 가운데 법원이 공개를 판결한 5권이 공개됐지만 정부는 앞으로 8ㆍ15 이전에 나머지 문서도 공개한다는 방침이어서 파문은 그때 되풀이될 전망이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만 봐도 당시 박정희 정부는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지원자금 확보에만 급급했고 일본측 역시 형식적인 지원으로 일관한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개인청구권 스스로 포기한 한국 정부=먼저 한국 정부는 개인청구권 문제를 철저하게 연구하자는 일본측의 요구에 대해 스스로 국내문제로 국한, 개인청구권 문제를 포기했다. 지난 64년 4월16일 도쿄회담에서 일본측은 개인관계 청구권 문제의 분류와 법적 문제 처리 등에 대해 양국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했다. 니시야마 아키다 일측 수석대표는 “청구권의 내용이 각양각색이므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어 후일 많은 분쟁이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서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구체적인 예로 ▦북한의 청구권 ▦재인한국인의 청구권 처리 ▦소멸되지 않는 청구권의 범위 등을 꼽았다. 그러나 한국측 수석대표인 이규성 주일공사는 “각종 청구권의 내용이 덩어리로 해결된 것으로 됐는데 그 다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결국 각각 국내의 문제로 취급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오히려 한국측 스스로가 개인청구권 문제는 소멸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한국측의 의견은 결국 청구권 협정 2항의 ‘(개인청구권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조항과 합의의사록의 ‘(한국측은) 앞으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조항으로 연결, 오늘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일 전후보상 요구소송에서 패하는 뼈아픈 현실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제개발 명분에 짓밟힌 개인의 권리=특히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 3억달러로 조성된 1,077억원 중 불과 8%인 91억여원(인명 25억원, 재산 66억원)만을 ‘청구권 보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자본재 및 원자재 도입과 농림수산, 종합제철공장 건설 등 경제개발 예산으로 임의 사용했다. 박정희 정부는 강제로 징용ㆍ징병된 사람 중 사망자와 재산권 소지자를 대상으로 71년 5월21일부터 불과 10개월 동안만 신청신고를 받아 지급하는 등 형식적인 보상을 일삼았다. 피징?사망자는 1인당 30만원, 예금ㆍ채권ㆍ보험금 등 재산청구권에 대한 보상은 신고금액 1엔당 30원씩으로 환산해서 각각 지급했다. ◇끝나지 않은 일본의 책임=한국측은 일제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위안부로 사용하는 등 역사적 과오를 씻기 위해서 ‘청구권’의 명분으로 자금을 지원할 것을 일본에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을 거부한 채 ‘경제협력자금’ ‘독립축하금’의 명분으로 지급할 것을 고집했다. 65년 5월14일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회의에서 니시야마 일본측 회담대표는 “우리측의 제공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며 분명히 못을 박았고 실제 협상은 이대로 타결됐다. 하지만 이 같은 일본의 입장은 90년대에 있었던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들의 보상요구에 대해 ‘한일협정으로 보상문제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반박해온 것과 대립되는 것으로 앞으로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보상 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일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본측이 최소한 도의적ㆍ인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도 여기에 있다. 한편 한일 양국은 62년부터 독도를 둘러싸고 팽팽히 맞선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측은 일본의 거듭된 독도문제 제기에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제3국에 의한 조정’이라는 타협안이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제시된 반면 일본측은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또 한국 정부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 몫의 청구권까지 요구했다가 일본측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호 기자 chamgil@sed.co.kr 입력시간 : 2005-01-1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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