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6일] 와트 증기기관


[오늘의 경제소사/3월6일] 와트 증기기관 권홍우 편집위원 1776년 3월6일, 영국 버밍엄의 한 탄광에 신형 증기기관이 들어왔다. 탄광업자들은 그 성능에 놀랐다. 이전에 선보였던 뉴커먼의 엔진보다 연료를 3분의1이나 적게 쓰면서도 힘은 두 배를 냈기 때문이다. 잔 고장도 없었다. 효율성과 신뢰성이 입증된 증기기관은 방직과 석탄ㆍ제철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산업혁명을 낳은 증기기관은 제임스 와트(James Watt)와 매튜 볼턴(Matthew Boulton)의 합작품. 기술은 있지만 자본과 경영 능력이 없었던 와트에 대한 볼턴의 투자가 맞물린 결과다. 1774년 와트에게 1,400파운드를 투자한 볼턴은 의회를 설득해 시한이 1년밖에 남지 않은 특허기간을 세기말까지 늘렸다. 판매 대상이라고는 탄광밖에 모르던 와트와 달리 볼턴은 전산업을 영업 대상으로 삼았다. 두 사람이 1799년까지 독점 공급한 증기기관은 모두 318대. 4마력짜리 엔진이 327파운드, 50마력짜리가 1,727파운드라는 비싼 가격(당시 사무직 평균 연봉이 100파운드)에도 주문이 잇따랐다. 최대 수요처는 방직업. 증기기관 114대가 뽑아낸 영국산 면직물은 세계 의류시장을 휩쓸었다. 갱도의 배수용으로 증기기관 56대가 설치된 탄광에서도 연간 1억5,000만톤의 석탄을 쏟아냈다. 유럽 전체 생산량의 다섯배에 이르는 영국 석탄은 제철과 기계공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증기기관은 제철소에 37대, 제분과 맥주공장에도 39대가 들어갔다. 여류 소설가 다이애나 물럭은 당시의 증기기관을 이렇게 묘사했다. ‘생명 없는 나무와 금속이 신비스럽게 결합된 이 놀라운 인간의 창조물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 괴물은 살아 있다!’ ‘괴물 증기기관’은 죽지 않았다. 혁신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7/03/05 16:48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