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형 장기불황 또는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끊이지를 않던 미국 경제에 한줄기 빛이 보인다. 침체국면을 당장 벗어나지는 못해도 경기냉각 속도가 줄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들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는 것. 특히 경기회복의 필요충분 조건인 금융시장도 안정될 조짐을 보여 우려했던 최악의 불황 시나리오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게 하고 있다. 그러나 월가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의 관건인 고용ㆍ주택시장의 추락이 여전해 경기가 회복으로 가는 전환점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장 긍정적 신호는 소매판매가 2개월 연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 소비가 미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코노미스트들은 소매실적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지난 2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1% 감소. 그러나 당초의 0.5% 감소 전망을 뛰어넘는 좋은 실적이다. 30년 만의 최악의 불황이라는 자동차시장을 제외하면 0.7% 늘었다. 앞서 1월 소매판매 실적도 1.0% 증가에서 1.8% 증가로 상향 조정됐다. 소매판매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연속 감소하면서 미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4ㆍ4분기 중 -6.2%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실물 부문에 이어 금융시장에서도 훈풍이 이어지고 있다. 케네스 루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회장은 이날 보스턴대 CEO클럽 연설에서 “올 들어 1~2월에 순익을 기록했다”며 “스트레스 테스트 이후에도 정부의 추가 자금을 지원 받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10일에는 씨티그룹, 11일에는 JP모건이 각각 올 들어 2월까지 이익을 내고 있다고 밝혀 주요 금융기관들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줄을 잇는 양상이다. 미국 양대 부실은행인 씨티그룹과 BoA의 실적호조는 금융주의 폭등으로 뉴욕증시를 3일 연속 랠리로 이끌었다. 다우지수는 이날 7,000선을 회복하면서 3일간 12% 상승했다. 미국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제너럴모터스(GM)조차 이날 비용절감 효과 등이 가시화하면서 당초 요청한 3월분 20억달러의 구제금융 자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해 금융시장 안정에 힘을 보탰다. 낙관론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지표 해석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조차 “금융시장이 안정돼야 오는 2010년 회복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몇몇 지표를 회복의 신호로 해석하기는 아직은 이르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데이비드 그린로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1~2월 소매판매 호조는 유통업체들이 연말 세일 부진을 만회하게 위해 재고 처리용 세일을 실시한 탓”이라며 “고용시장이 심하게 압박을 받고 있고 신용상황도 빠듯해 소매가 계속 늘어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씨티그룹과 BoA의 실적개선 발표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두 은행이 이익을 냈다고는 하지만 여기에 부실자산의 상각처리를 반영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이언 세퍼슨 하이 프리퀀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주간 실업자 청구건수로 본 고용시장은 더욱 악화될 것임을 예고한다”며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소비지출이 증가할 수가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