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17>시험문제와는 다른 재판

사건에 딱맞는 ‘정답’ 자료 없어 진실·정의에 맞는지 끝없는 고심



고등학교 시절 수학능력시험을 보러 가던 날이 문득 떠오른다. 3년 내내 준비했음에도 막상 시험시간이 다가올수록 ‘과연 이 시험을 치러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잘해야 한다는 다짐이 교차했다. 알쏭달쏭한 문제도 있었고 어느 것이 답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어떤 답이라도 써 넣어야겠기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 중 한가지의 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정답과 비교해 보니 찍은 문제 중에서 운 좋게 맞은 것도 있고 틀린 답도 있었지만, 그것도 다 나의 운이려니 받아들이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판사’라는 직책을 갖고 사건을 대하면서, 여기에서 답을 구하는 것은 시험문제를 푸는 것과 너무나도 다름을 실감하고 있다. 시험문제에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몇 년의 사법시험 준비와 2년의 연수원 과정을 마친 후 막상 사건을 대하는 지금, 오픈 북(open book) 시험과 같이 각종 법전과 참고문헌을 펴놓고 아무리 뒤져봐도 사건에 딱 들어맞는 ‘정답’을 주는 자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법대생이 법조문을 줄줄 읊어대면서 법을 잘 안다는 것을 과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런 법조문 암기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법전을 놓고 찾아보면 되는데 굳이 법조문을 외워야 할 필요도 없고, 외우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기도 하다. 많은 경우 일단 사실을 확정하더라도 어떤 특정한 조항을 적용해야 하는지 불분명하거나, 아예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존재하지 않을 때도 많다. 법의 적용만큼 어려운 것이 사실의 확정이라는 문제다. ‘사실’은 하나일진대 신기하게도 각자가 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를 때가 많고, 더군다나 그 사건에 얽힌 사람과 사연이 많을수록 기록은 두꺼워지기 마련이고, 그 안에 담긴 서로 다른 주장과 설명을 읽고 있노라면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은 미궁 속으로 더욱 꼭꼭 숨어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사건들을 많이 접하다 보면 당사자 본인들도 알지 못하는 사건의 전말을 제3자가 알 수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재판은 시험문제와는 달리 답을 모른다고 공란으로 둘 수 없다. 고대의 신전에서 했던 것처럼 하늘의 신탁에 따를 수도 없으며, 동전을 던져 앞, 뒷면으로 승부를 가를 수도 없는 일이다.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하나같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법원에서 내린 결론은 최종적이면서도 당사자에게 강제력을 가진 것이기도 하기에 판사는 문제의 해결을 포기할 수도 대충 찍듯이 넘겨버릴 수도 없다. 그래서 결론이 쉽게 내려지지 않는 사안일수록 과연 내가 확정한 사실관계가 진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그로부터 내린 결론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밥을 먹을 때도 고민, 차를 탈 때도 고민, 심지어는 꿈에서도 고민을 하며, 그 판단의 무게와 어려움에 고통스러워질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되면 되게 한다는 심정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될 때까지 기록을 읽고 또 읽으며 풀어야 하는, 풀 수밖에 없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하여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감히 희망하건대,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서 법원이 내린 결론을 받아 든 당사자들은 그 결론에 깨끗이 승복하고, 새로이 법원에 각자의 사연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은 ‘혹시 부당한 결론이 나서 억울한 경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이곳을 통해서라면 나의 정당한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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